2012년 6월 20일 남극 세종기지의 모습. 오전 11시가 됐지만 해가 뜨지 않아 여전히 어둡다. 남극에선 4∼9월에는 해 뜨는 시간이 길지 않아 수면리듬을 포함해 신체리듬이 깨지기 쉽다. 극지연구소 제공
이후 남극 세종기지 대원의 심리상태를 분석한 연구 결과가 최근 발표됐다.
2월 27일 오후 서울 고려대 구로병원에서 열린 ‘제1회 극의학 심포지엄’에서 조경훈 극지연구소 공중보건의사는 ‘남극 생활이 수면주기와 기분 및 심리상태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2012년 남극 세종기지 월동의사로 1년간 근무한 경험과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는 이헌정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과 교수가 세종기지 월동의사들과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연구진은 액티와치(Actiwatch)라는 손목시계 형태의 장비를 남극 월동대 대원 모두 24시간 착용하고 생활하게 했다. 액티와치는 진동과 빛을 감지해 사람이 언제 잠이 들었는지, 햇빛은 언제, 얼마나 받았는지를 기록해주는 장치다.
2010년 1차 실험에서는 액티와치를 대원들에게 나눠준 뒤 설문조사를 통해 자료 수집에 집중했다. 이와 함께 남극 월동의사들은 대원들의 머리카락과 타액을 이틀에 한 번씩 채취해 냉동 보관하는 한편 기분과 심리상태를 측정하는 설문조사표를 일주일에 한 장씩 작성하도록 했다.
그 결과 남극의 일조량이 크게 줄어드는 4∼9월에 대원 대부분이 잠을 잘 자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시기에는 너나 할 것 없이 우울지수, 무기력지수, 공격성지수 등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2년 2차 실험 때는 실험기간을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눠 전반부에는 2010년 때와 같이 단순 조사만 했다.
조 씨는 “우울지수, 공격성지수, 피로-무기력지수 등은 주관적인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객관성이나 타당성을 확보하기는 어렵지만 수면리듬이 스트레스와 연관관계가 상당히 높다고 볼 수 있다”며 “새로 건설되는 남극 장보고기지에는 라이트박스 설치를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연구팀은 이번 여름 쇄빙선 아라온호에 실려오는 남극 대원들의 머리카락과 타액 샘플로 추가 분석을 진행할 계획이다. 머리카락은 수면 상태, 타액은 호르몬 변화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김한겸 대한극지의학연구회 회장은 “아직 중간발표 단계지만 남극 세종기지 대원들의 정신상태를 처음 조사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며 “이번 연구 결과는 남·북극 파견 과학자는 물론이고 장기간 항해를 나서야 하는 외항선원, 잠수함 등에 탑승하는 군인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