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에어 첫 여성조종사 최윤경 씨
지난달 21일 제주 서귀포시 대한항공 정석비행장의 비행 시뮬레이터 안에서 진에어의 첫 여성 조종사로 입사한 최윤경 씨가 모형 비행기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 씨는 아직 후보생 신분이지만 이날은 회사의 허락을 받아 정복 차림을 했다. 그가 입은 청바지는 진에어의 정식 유니폼이다. 진에어 제공
국내 항공사의 조종사 4527명 중 여성은 후보생을 포함해 19명(0.4%)뿐이다. 소득이 높고 세계 각국을 누비는 항공기 조종사는 선망 직업 중 하나지만 여성의 진출은 아직 미미하다.
최 씨는 “‘여자가 무슨 조종사냐’는 주변의 선입견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지만 일단 파일럿이 되겠다는 목표를 가진 뒤에는 안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 조종사, 동경에서 현실로
최 씨는 강원 강릉시 강릉비행장 주변에서 자랐다. 어릴 적 고막을 찢는 듯한 굉음에 고개를 들어보면 비행기가 머리 위를 날아가고 있었다. ‘비행기에 타면 어떤 기분일까.’ 막연한 동경이 싹텄다.
고교에 입학한 뒤 최 씨는 공군사관학교 출신 전투기 조종사 부부인 정준영 박지연 씨의 사연을 접했다. 여자도 조종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안 뒤 조종사가 되겠다는 생각만 했다. 아버지는 남자들 틈에서 부대낄 딸을 만류했다. 그러나 끈질기게 설득해 2005년 한서대 항공운항과에 입학했다. 40명 동기 중 유일한 여학생이었다.
그런데 비용이 만만찮았다. 대학 학비는 실습비를 포함해 한 학기에 1000만 원가량 됐다. 치킨가게를 하는 최 씨의 집은 넉넉한 편이 아니었고 한 살 어린 남동생까지 대학에 입학했다. 최 씨는 대학에 다니는 4년 내내 학자금 대출을 받고, 교내 식당 아르바이트 등 근로장학생으로 일했다.
재학 중 비행시간은 180시간. 항공사에 따라 250∼1000시간인 입사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최 씨는 졸업 후 2년간 한서대 비행교육원 교관으로 일하며 비행시간으로 총 1100여 시간을 쌓았다. 해외 경험은 없었지만 밤새워 영어에 매달린 끝에 항공영어 구술능력시험에서 국제선 운항에 필요한 등급도 받았다.
고교 때 체육 실기를 하면 반에서 1, 2등을 다투는 등 체력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함께 입사한 남자 동기들에 비하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그는 어머니가 보내준 보약을 챙겨먹고 피트니스센터에서 땀을 흘린다. 교육 동기 47명 중 홍일점인 최 씨는 “겉돌지 않게 배려해주는 동기들이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지원할 항공사를 고를 때는 여성 조종사를 배려하는 곳인지 꼼꼼히 살펴봤다. 조종사와 승무원이 유니폼으로 청바지를 입는 진에어의 자유로운 분위기에 끌렸다. 최 씨는 진에어의 1호 여성 조종사다. 회사 관계자는 “믿음을 갖고 지원한 최 씨가 훌륭한 조종사가 될 수 있게 적극 돕겠다”고 말했다.
○ 금녀(禁女)의 벽은 옛말
국내 여성 조종사들은 “직업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가장 망설이게 한 것은 출산과 육아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장시간 비행이 잦고 근무시간이 불규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항공기 조종사는 금녀의 영역이라는 시각이 점차 바뀌고 있는 데다 국내 항공업계에 조종사 부족 현상이 심해지고 있어 여성 조종사가 갈수록 늘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연방항공국에 따르면 2010년 말 기준 미국의 여성 조종사는 5623명으로 전체 조종사의 5.4%에 이른다.
한국항공대 비행교육원 박계홍 부원장은 “교육을 하다 보면 여성 훈련생이 특유의 섬세함과 침착함으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서귀포=이진석 기자 ge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