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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공채 아시나요

입력 | 2013-03-02 03:00:00

1919년 임시정부 발행 원-달러 채권
일제에 발각되면 처벌… 대부분 소각, 상환 30년동안 1%만 원리금 찾아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했던 ‘독립공채’의 상환과 관련한 특별법이 만들어진 지 올해로 30년이 됐다. 그러나 지금까지 상환 실적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1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1983년 제정된 ‘독립공채 상환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따라 총 3차례 신고기간에 정부가 원금에 이자를 더해 상환한 사례는 57건, 금액은 3억4000여만 원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액면가 기준으로는 달러화 채권(사진) 2150달러, 원화 채권 1만610원으로 실제 발행액의 10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독립공채는 1919년 임시정부가 중국 상하이와 미국 하와이에서 각각 원(圓)화와 달러화 로 표시해 발행한 채권이다. 이 채권들은 상하이에서 4000만 원(당시 환율로 계산하면 약 20만 달러), 하와이에서 25만 달러 등 총 45만 달러어치가 발행됐다.

원화표시 채권은 액면가가 10원, 50원, 100원 등 3종이며 임시정부 초대 재무총장을 지낸 이시영의 직인이 찍혀 있다. 발행금리는 연 5%. 하와이에서 발행된 달러화 표시 채권은 5달러, 10달러, 25달러, 100달러 등 4종으로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명의로 발행됐으며 금리는 연 6%였다.

발행 당시 독립 후 5∼30년 내에 원리금을 갚기로 했으나 광복 이후 한동안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본보 1950년 6월 10일자 기사에 따르면 서울 명륜동에 사는 안모 씨가 일본경찰의 눈을 피해 간직하던 100원권 독립공채를 상환해 달라고 정부에 요구했지만 당시 재무부 직원이 “법적 근거가 없다”며 그냥 돌려보내기도 했다.

상환을 위한 법적 근거는 1983년에 마련됐다. 특별조치법에 따라 당초 남한에 거주하는 사람이 1984∼87년 신고한 독립공채에 한해서만 상환하도록 규정했다가 이후 2차례 신고기간을 연장하기도 했다. 재정부 관계자는 “특별조치법상 신고기간인 2000년 12월 31일을 끝으로 상환과 관련한 문의는 없었다”면서 “그러나 북한주민들이 보유하고 있을 수 있는 독립공채에 대한 상환약속을 지키기 위해 특별조치법을 폐지하지는 않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세종=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