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금융가문 로스차일드 1, 2니얼 퍼거슨 지음·윤영애(1권)박지니(2권) 옮김/660, 852쪽 3만5000, 3만8000원 21세기북스
독일 헤세카셀의 선제후(황제 선거권을 가진 제후)가 영국의 유가증권에 투자하기 위해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에게 자신의 재산을 맡기고 있다. 이는 골동품 투자로 돈을 벌던 로스차일드 가문이 국제적인 환어음 거래를 통해 본격적으로 자산을 축적하고 ’가문의 신화’를 만들게 된 계기가 됐다. 모리츠 다니엘 오펜하임이 1861년에 그린 작품. 21세기북스 제공
정답은 ‘로스차일드’다. 18∼20세기 초 세계에서 가장 큰 은행이자 가장 부유했던 가문의 이름이다. 메릴린치, 모건스탠리, JP모건, 골드만삭스에 국제통화기금(IMF)까지 합한다면 모를까, 오늘날 어떤 국제은행이나 기업도 로스차일드 가문이 전성기 때 장악했던 세계적인 부의 규모에 미치지 못한다.
이 때문에 로스차일드 가문을 빼놓고는 자본주의 경제사를 논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또 각국의 왕이나 대통령은 꼭두각시일 뿐 그들이 세계의 정치와 경제를 지배하고 있다는 음모론도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음모론자들은 유대계 로스차일드 가문이 영국 중앙은행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를 장악해 왔으며 에이브러햄 링컨 암살, 보어전쟁, 이스라엘 건설, 러시아혁명, 산업혁명, 수에즈 운하 건설, 히틀러의 자금 조달까지 모든 것을 주도했다고 주장한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유대인 빈민굴 게토에서 골동품 중개업으로 돈을 번 로스차일드 가문은 다섯 아들이 프랑크푸르트, 런던, 파리, 빈, 나폴리로 진출해 각자 은행을 세우면서 초국적 금융제국을 건설했다. 가문의 파트너들은 수시로 고어체 히브리어와 독일어가 뒤섞인 ‘유덴도이치(Judendeutsch)’로 편지를 주고받았다. 외부인이 읽기 힘든 언어이기 때문에 편지에는 그들이 거래했던 군주와 장관에 대한 비밀, 욕설까지 생생하게 담겨 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왕이나 교황, 제후들에게 대출해주고, 국공채에 투기해 어마어마한 재산을 형성했다. 특히 전쟁을 준비하는 왕은 로스차일드의 주요 고객이었다. 이 때문에 로스차일드 가문이 전쟁을 부추겨 돈을 벌었다는 악명이 높았다. 그러나 실제론 로스차일드 가문이 재정보증을 하거나 거절함으로써 전쟁뿐만 아니라 평화를 가져오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5개국에 걸쳐 있던 이 가문은 절대왕정과 입헌군주정, 자유주의자, 혁명세력을 구분하지 않고 사업 기회를 포착해 냈던 진정한 ‘코즈모폴리턴’이었던 셈이다.
이 책은 1, 2권 합쳐 1500쪽이 넘는 분량에, 돈이 영국의 파운드화로만 표시돼 있는 등 독자들에게 친절한 역사책은 아니다. 그러나 천대받던 유대인 가문이 세계 최대 거부로 성장하고 쇠락하는 과정을 묘사한 에피소드는 잘 차려진 성찬을 맛보는 것처럼 지적인 독서의 흥미를 채워준다. ‘유대인의 왕’으로 불렸던 그들이 철저한 족내혼(族內婚)으로 유럽 왕실을 흉내 내고, 수많은 예술가를 후원해 ‘제2의 메디치가’를 꿈꾸었던 이야기도 눈길을 끈다.
그러나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로스차일드가를 통해 현대 금융위기를 읽어낸다는 점이다. 국제자본 흐름의 막대한 이동성이 각국의 재정과 중앙은행을 왜소하게 만들고, 채권과 증권시장에 출현하는 혁신을 규제가 따라잡지 못하는 것은 19세기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전쟁과 혁명이 끊이지 않았던 변덕스러운 시장에서 사소한 실수는 개별 기업과 국가에 무참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