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땐 ‘엄중 회색’… 증시에선 ‘대박 빨강’
박 대통령은 헌정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인 만큼 입는 옷, 드는 가방 하나하나 주목을 받는다. 박 대통령도 스타일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패션 스타일은 정치이자 문화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당선인 시절 새누리당 의원들과 오찬을 하며 나뭇잎과 꽃으로 장식된 식탁을 보고 “먹고사는 문제도 중요하지만 이런 문화가 국격과 관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패션에 대한 철학이나 감각도 남다르다. 화려해서가 아니라 패션을 통해 검소와 단아, 강인함이란 특유의 ‘박근혜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만들어냈다. 청와대 생활에선 그동안 행사 때만 헤어스타일을 봐줬던 미용사가 출퇴근하고, 스타일리스트도 관행대로 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취임 첫 주 청와대 패션은 여전한 ‘박근혜 스타일’이었다. 후보와 당선인 시절 대변인으로 ‘그림자 수행’한 조윤선 여성부 장관 후보자는 “박 대통령은 소박하고 평범한 차림새를 고집하면서도 격조 있게 보이기 위해 상당히 노력한다”고 전했다.
육영수 여사의 ‘검소’ 대물림
박 대통령은 대선 이후 8벌가량을 갖춰 놓고 일주일 단위로 돌려 입는다. 오늘 입은 옷은 약 일주일 뒤 다시 볼 수 있는 식이다. 청와대 입성 둘째 날인 2월 26일의 회색 재킷 차림은 2월 20일 한국경영자총협회 방문 때와 같다.
그는 옷을 사 모으기보다는 가지고 있는 옷으로 연출하는 사람이다. 재킷 안에 즐겨 입는 빨간색 니트는 몇 년 전 사진에서도 발견된다. 박 대통령 측 관계자는 “한 번 산 옷을 오래 입는데 그 옷들을 트렌드에 맞게 수선하기도 하고, 또 이렇게 저렇게 조합해 다른 분위기를 낸다”고 말했다. 이는 검소함을 강조했던 고 육영수 여사의 영향으로 보인다. 1974년 육 여사가 총탄을 맞고 서울대병원에 후송됐을 때 간호사였던 이애주 전 새누리당 의원은 “육 여사가 입은 한복 속치마가 여러 번 꿰맨 낡은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박 대통령은 패션 정보에 대해서도 보안이 철저하다. 겉옷은 100% 맞춤복인데 어느 디자이너의 ‘작품’인지 알려진 적이 없다. 박 대통령 측 관계자는 “오래전부터 다니는 양장점이 한 군데 있는데 여기만 간다. 거기서 맞춰 입는다”라고만 전했다.
스타일 변신에는 이유가 있다
박 대통령은 패션을 정치 메시지를 전달할 상징으로 잘 활용하는 정치인이다. 좀처럼 변신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중요한 정치적 결단이 있을 때는 옷 스타일이나 머리 모양을 바꿔 이를 나타냈다.
정치 인생 15년 동안 네 차례의 큰 스타일 변화가 있었다. 1998년 국회에 첫발을 디딘 뒤 10년 가까이 투피스 형태의 짧은 재킷과 긴 플레어스커트나 벨벳 소재 홈드레스 스타일의 ‘부인 패션’을 고수했다. 육 여사에 대한 추억을 이끌어내려는 고도의 이미지 전략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당 대표 시절에는 상대당과 담판을 짓는 자리에 치마 대신 바지를 입고 나타나 ‘전투복’이라는 말도 생겼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비주류기를 거치며 갈색, 카키색 등 톤을 낮춘 소박한 정장으로 스타일을 바꿨다. 깃이 큰 셔츠는 부드러운 인상을 주는 라운드형 이너로 대신했다. 치마는 평상시엔 더이상 옷장에서 꺼내지 않았다. 치마 차림은 2010년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 결혼식이나 2012년 국립현충원 참배 때 등 손에 꼽힌다.
대선 이후엔 목을 감싸는 만다린 칼라(Mandarin collar)의 밝은 색깔 재킷으로 적극적이며 위엄이 느껴지는 ‘지도자 패션’을 선보이고 있다.
계절마다 소재만 달리할 뿐 같은 디자인을 유지할 때에도 색깔로 정치적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른바 ‘컬러 정치’다.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따른 여야 3자 회동(2월 7일)과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의 긴급회동(2월 12일) 때는 모두 깃에 검은색 포인트가 들어간 회색 재킷을 입었다. 엄중함을 나타낸 것이다. 2월 25일 취임식과 외교사절 접견에는 같은 디자인에 안정을 상징하는 카키색, 녹색을 선택했다. 새 정부의 방향을 설정하는 인수위원회를 찾을 때는 베이지 등 밝은색을 활용했다. 대선 전날 한국거래소(KRX)에는 주식 상승세를 뜻하는 빨간색 재킷을 입고 방문해 “5년 내에 코스피 3000 시대를 꼭 열겠다. 한번 두고 보세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패션 ‘원칙’, 적재적소와 과유불급
패션에서도 나름의 원칙이 확고하다. 시간(time)·장소(place)·상황(occasion)에 알맞은 ‘T·P·O’ 공식이다. 액세서리까지 스스로 세심히 고른다.
‘T·P·O’ 공식이 가장 잘 발현될 때는 외국 방문에서다. 박 대통령은 외국을 방문할 때 그 지역 문화나 역사 등에 대한 철저한 사전 학습을 거쳐 이에 맞는 옷을 준비해 간다. 국내에서와 달리 밝고 화려한 스타일에 치마도 종종 입는다. 몽골에선 초원과 사막을 떠올리는 진녹색 원피스나 황금색 블라우스를, 네덜란드에선 오렌지색 머플러를, 포르투갈에선 현지 전통 의상으로 많이 활용되는 보라색 재킷을 입는 식이다. 상대국을 배려한 일종의 ‘패션 외교’다.
액세서리에선 과유불급(過猶不及) 소신이 강하다. 단정한 정장 차림에 목걸이나 브로치 하나로만 포인트를 준다. 취임식 당일 청와대 만찬에선 평소에 볼 수 없던 진주귀고리를 한 모습으로 등장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브로치는 나비나 꽃잎 모양을 즐겨 단다. 2011년 7월 최고위원 선출 전당대회에는 왕관 모양 브로치를 하고 참관했는데 공교롭게 이날 친이(친이명박)계에서 친박(친박근혜)계로 당내 세력 교체가 일어났다.
박 대통령은 2012년 기자들과 만나 액세서리에 대한 철학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액세서리는 옷을 딱 입었는데 뭔가 허전할 때 한다”며 “액세서리 하나로 분위기 전체가 살 수 있는데 과도하면 액세서리 역할을 못하는 거다. 과유불급이란 말이 있듯이 뭐든 맞도록 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밝혔다.
‘박근혜 올림머리’ 신부 웨딩헤어 인기
브랜드 정보는 비밀에 부치는데 대선 과정에서 구두 브랜드가 드러난 적이 있다. 백화점에서 오래전 철수한 국내 중저가 브랜드 ‘엘레강스’ 제품이었다. 10년 넘게 신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화제를 불러온 ‘타조백’ 이외에 지난해 1월 SBS ‘힐링캠프’ 출연 당시 붉은색 소가죽 가방이 TV 화면에 비치기도 했다. 누리꾼 수사대는 국내 브랜드 ‘몽삭’의 서류가방 50만 원대 ‘아브르초’라고 밝혀냈다. ‘박근혜 효과’로 판매량이 급증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시계를 항상 착용하는데 세 종류가 카메라에 포착됐다. 하나는 ‘라도’ 제품이고, 최근에는 ‘론진’ 제품을 주로 한다. 둘 다 스위스 브랜드지만 1980년대 한국 업체가 기술협정을 맺고 국내에서 제작한 적이 있다. 박 대통령의 시계는 이때 제조된 모델로 보인다. 대선 기간 개성공단에서 제작한 빨간 손목줄 시계를 착용하기도 했다.
첨언 하나. 최근 신부의 웨딩 헤어로 “박근혜 올림머리 스타일로 해 달라”는 주문이 많다고 한다. ‘미혼 대통령’은 무슨 생각이 들까.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