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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정미경]미국 언론은 왜 오바마에 날 세우나

입력 | 2013-03-04 03:00:00


정미경 워싱턴 특파원

2009년 9월 미국 피츠버그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데니스 맥도너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은 데이비드 생어 뉴욕타임스 기자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고 귓속말을 하기 시작했다. 둘은 곧바로 자리를 떠서 뒤쪽으로 갔다. 뒤쪽에는 짐 존스 국가안보 보좌관, 게리 시모어 대량살상무기(WMD) 정책조정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생어 기자와 백악관 관리들은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눈 후 자리로 돌아왔다.

“다른 기자들이 보는 앞에서 그러는 것이 어디 있느냐.” 이런 ‘수상한 장면’을 지켜본 다른 기자들은 백악관 관리들에게 항의했다. 관리들은 “별것 아니다. 걱정할 필요 없다”며 해명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걱정할’ 일이었다. 생어 기자는 그날 저녁 이란 정부가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몰래 수년 동안 비밀 핵시설을 운영해왔다는 특종 기사를 터뜨렸다. 일격을 당한 다른 기자들은 한밤중까지 이곳저곳에 전화를 돌리며 기사 확인 작업을 벌여야 했다.

생어 기자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뉴욕타임스의 안보담당 선임 기자다. 그가 당시 관리들로부터 전해 듣고 이란 특종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특정 언론에 특혜적 정보 접근을 허용하는 듯한 분위기를 조성한 것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잘못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최근 오바마 행정부와 언론의 갈등이 심상치 않다. 지난달 17일 오바마 대통령이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와 언론에 알리지 않고 골프 라운딩을 한 것이 직접적인 발단이다. 언론계에서는 그동안 오바마 행정부에 쌓였던 불만과 비판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언론의 정보 요청에 응답이 없고 관리들에게 언론 접촉 금지령을 내리는가 하면 비판적 언론 보도에는 “나중에 보자”며 보복성 대응을 하기 일쑤다. 그런데다 특정 언론하고만 친하게 지낸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다.

언론의 비판은 보수적인 폭스뉴스에서부터 진보적 공영방송 NPR까지 성향을 가릴 것 없이 나오고 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언론학자들은 “오바마 행정부에 호의적이던 언론이 ‘일방적 짝사랑’에 지쳤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비판에 앞장선 워싱턴포스트는 ‘골프 파동’ 이후 줄잡아 하루에 한 개 이상씩 오바마 행정부를 비판하는 기사를 내고 있다. 워터게이트 특종 보도로 유명한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부편집인까지 나서 정부지출 자동삭감 문제를 놓고 연일 정부에 비판의 화살을 날리고 있다. 그는 “백악관 고위 관리로부터 ‘그런 식으로 말하면 후회할 것’이라는 협박성 발언까지 들었다”고 폭로했다.

반면 뉴욕타임스는 정부와 언론의 갈등에 대해 언급이 없다. 각종 이슈에 대해 심층 보도를 해온 뉴욕타임스로서는 매우 이례적이다. 오바마 행정부와 친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란 ‘스턱스넷’ 사이버공격, 테러 살생부 운영 등 뉴욕타임스의 굵직한 특종은 정부가 사전에 정보를 줬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워싱턴에서 떠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가 걷는 길은 조금 다르다. 미셸 오바마 여사의 아카데미 시상식 등장까지 문제 삼는 워싱턴포스트의 사소한 ‘보복성’ 기사들이 지나친 감은 있지만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정부의 폐쇄적 비밀주의적 언론관에 정면 도전하는 문제의식은 바람직하다고 본다. 반면 뉴욕타임스의 날카로운 비판은 아직 살아있지만 그 칼날이 무뎌진 것만은 사실이다. 취임 초기 ‘불통 브리핑’으로 논란이 된 한국 박근혜 정부는 어떤 언론을 원하고 언론과 어떤 관계를 쌓아가기를 원하는지 궁금하다.

정미경 워싱턴 특파원 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