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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시베리아 분위기 숲에 풀장까지 만들어줘…

입력 | 2013-03-04 03:00:00

“백두산호랑이 이제야 제 대접, 어흥”
서울동물원 호랑이 우리 28년만에 리모델링… 내년 5월까지 관람 중단




내 이름은 ‘백운’(13세·암컷)이야. 과천시 서울동물원 유일의 백호라 동물원을 대표하는 최고 스타지. 그런데 스타 대접은 못할망정 꼬마 녀석들은 나만 보면 제 아빠에게 달려가 “호랑이 아파? 왜 누워만 있어?”라고 묻더라고. 기분 나쁘게 말이지.

사실 나도 원래부터 이렇게 누워만 있는 타입은 아니었다고. 이래 봬도 난 백두산을 호령하던 시베리아호랑이 혈통이거든. 그런데 우리가 왜 늘 어깨가 축 처져서 어슬렁거리거나 누워서 빈둥대느냐고? 동물원에서의 생활이 지나치게 단조롭고 움직일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이야.

와 본 사람은 알겠지만 어디 이게 호랑이가 살 수 있는 곳이니? 주변은 온통 콘크리트로 만든 바위 덩어리뿐이고 나무도 몇 그루 없지. 쉼터도 없고, 환경도 낯설다보니 무기력해지거나, 남는 에너지를 발산하기 위해 몸을 앞뒤로 흔들거나 이상한 행동을 반복하는 친구들도 생기는 거야. 나도 가끔은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한데 어디 잠시 몸을 감춰 쉴 곳도 없잖아. 게다가 구경 온 사람들을 해치지 못하게 한다고 콘크리트로 낭떠러지(해자)까지 만들어놨으니…. 도대체 난 숨 쉴 공간도 없다고!

내가 사는 ‘호랑이사’는 동물원이 처음 생긴 1986년에 만들었다고 하더군. 그때야 ‘동물 복지’ 같은 말도 생소할 때이니 집을 이렇게 만든 게 이해가 되기도 해. 그때만 해도 우리 동물원이 최신식이었대. 하지만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도 20년이 넘어가면 리모델링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가 나오잖아. 게다가 처음 5마리이던 우리 식구도 벌써 23마리까지 늘어나서 이젠 집도 많이 비좁거든.

그런데 요즘 즐거운 소식을 듣게 돼 마음이 설레. 몇 년 전부터 하네 마네 말만 많던 ‘백두산호랑이 숲 조성 계획안’이 드디어 승인이 났거든. 내일부터 공사가 시작돼서 내년 5월부터는 새 집에 머물 수 있다는 거지.

총면적이 마당을 합쳐서 1300m²에서 3000m²로 늘어나고 친환경 공법으로 만들어진대. 원래 우리 고향인 시베리아의 분위기를 살려 소나무 조팝나무 같은 나무 수백 그루를 심어 숲처럼 만든다는 거야. 요즘 해외 동물원의 재건축 추세인 ‘동물 복지’ 개념이 도입되는 거지. 숲을 만들면 내 프라이버시를 지킬 은신처가 생기고 움직일 곳도 많아져 ‘행동 풍부화’가 가능해질 거야. 구경 온 사람들은 우리를 볼 수 있지만 안에 있는 우리 호랑이 식구들은 밖을 볼 수 없게 특수 유리창을 설치한다더군.

고급 주택에 수영장이 빠질 수 없지. 내가 원래 영하 10도에도 물놀이를 할 정도로 물을 좋아하거든. 그래서 새로운 집에는 물길과 폭포를 만든대. 내년에 놀러오면 내가 얼마나 수영을 잘하는지 확인해 봐. 물속에서 내가 노는 모습을 유리창 너머로 볼 수 있는 관람시설도 만들거든. 또 새 집에는 1층과 2층 관람대 말고도 우리 식구들과 같은 높이에서 관찰이 가능한 반구형 유리 관람대 등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시설이 늘어나. 우리 집 재건축 비용은 총 36억 원이 든대. 하지만 ‘내가 낸 세금으로 호랑이집이나 지어주고 있다’는 옹졸한 생각은 하지 말아줘.

참, 아쉽지만 공사 기간에는 우리 식구를 만날 수 없으니 괜히 날 보러 왔다가 발길 돌리지 말아줘. 내년 5월 집들이에서 만날 때까지 안녕∼.

박진우 기자 pj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