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현 한국화학연구원장
고대, 중세 그리고 근대에 이르기까지 왕실이나 귀족 같은 특권층을 제외한 일반 평민들의 삶은 풍요로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 화학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인류의 의식주에 혁명적인 변화가 시작됐다. 석유에서 비롯된 플라스틱이나 페인트, 합성섬유는 주거와 의복에 편리함과 화려함을 가져왔다. 도시 건물들은 고기능성 페인트와 마감재를 사용해 밝고 역동적인 자태를 뽐내고 있다. 화장실을 실내로 들어오게 만든 것도 성형이 자유로운 플라스틱 활용이 대폭 늘어난 덕분이다. 비록 빈민가가 배경이지만 레미제라블 속 등장 인물들의 얼굴과 머리가 지저분한 것도 따지고 보면 비누와 치약, 샴푸 같은 화학제품들이 본격적으로 상용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화학자들이 만든 질소비료와 작물보호제는 식량 생산을 폭발적으로 늘려 수많은 인류를 배고픔의 고통에서 해방시켰다. 특히 화학은 인류가 겪어온 질병의 고통을 획기적으로 줄여주었다. 페니실린, 아스피린 같은 신약 개발이 바로 화학을 통해 이뤄졌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권위의 상인 노벨상은 20세기가 시작된 1901년에 제정됐다. 제정 이후 매년 노벨화학상을 통해 화학이 인류에 기여한 바를 전 세계인들에게 알리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노벨은 누구보다도 화학의 인류애적 가치와 경제적 효과를 꿰뚫어 보았던 것이다.
최근 한국화학연구원을 비롯한 우리나라 화학계는 화학산업이 당면한 문제점을 해결할 미래전략으로 ‘CHEMI(케미) 2020’을 수립했다. 이를 실현함으로써 화학산업이 지구환경을 살리고 대한민국을 무역 2조 달러 시대로 이끄는 희망의 산업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화학산업은 파스퇴르, 라부아지에, 퀴리 부인 등 세계적 화학자를 배출한 프랑스를 제치고 세계 6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해 수출 부문에서도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화학이 국가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화학의 진실에 다가갈수록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도 커질 것이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불행한 사고를 예방하고 사회적 현안에 대한 불필요한 갈등도 해결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김재현 한국화학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