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시간반 민생탐방 르포
남대문시장 간 鄭총리 정홍원 국무총리(왼쪽)가 민생 행보를 본격화했다. 정 총리가 취임 이후 첫 주말인 2일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국산 돔 3마리를 구입하면서 상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정홍원 국무총리는 2일 민생현장 방문 도중 냉면으로 점심을 먹다 기자에게 이같이 말했다. 기자가 문 위원장의 당시 발언을 인용해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법 아니냐”고 하자 그는 “자꾸 놀라면 습관이 된다”며 뼈있는 농담을 했다. 과거와 달라진 여건을 무시하고 의심부터 하려 드는 정치권의 관성 때문에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는 취지였다.
○ 정 총리 행정공백 속 ‘민생행보’
그런 정 총리가 2일 오전 9시부터 5시간 반 동안 숭례문 복원 현장-남대문시장-남산-동대문패션타운-청계천-종로소방서-인사동 화재현장 등 민생현장을 돌며 시민들을 만났다. 그는 이날 차량을 이용하지 않은 채 운동화와 점퍼 차림으로 총리실 직원 및 경호원들과 약 16km(약 2만 보)를 걷는 강행군을 했다. 총리실 관계자는 “일상적인 국정이 흔들림 없이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줘 국민을 안심시키면서 공무원들에게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민생을 챙기자는 의지가 담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총리는 정치 현안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하지만 남산을 오르며 동행한 기자에게 “(정부) 조직은 일단 구성하게 하고 세월이 지난 다음 평가하는 게 맞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제의한 여야 대표회담에 대해서는 “이렇게까지 하는데 야당이 좀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정부조직법이 통과되지 않아 공백 상태인 내각에 대한 답답함이 묻어났다.
미뤄지고 있는 국무회의에 대해선 “아주 시급한 사안은 없지만 이번 주에는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발표된 김동연 국무총리실장 내정자에 대해선 자신이 추천했다고 밝혔다. 그는 “큰 인연은 아니지만 인연이 있다. 신망이 두텁고 평이 좋다”고 말했다.
총리실 관계자들의 눈에 비친 정 총리의 첫인상은 법조인 출신임에도 정무 감각이 상당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지난달 28일 문 위원장 예방 당시 총리실에서는 의례적인 인사를 예상했다. 하지만 정 총리는 작심한 듯 “(정부조직법 개정안 통과를) 도와주면 같이 좋은 평가를 받을 것”이라며 매달렸다. 3·1절에는 대통령이 기념식을 여는 만큼 전직 총리들은 별다른 일정을 잡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정 총리는 “무슨 소리냐. 독립운동을 하신 애국지사들이 계시지 않으냐”며 여성독립운동가 민영주 여사의 자택을 찾았다. 문간을 들어서며 “지사님 같은 분들이 안 계셨으면 어떻게 오늘 대한민국과 저희들이 있겠습니까. 우리나라를 대표해 절을 올리겠습니다”라며 넙죽 엎드렸다
정 총리는 2일 남대문 복원 현장과 인사동 화재 현장을 방문했다. 남대문 화재(2008년 2월 10일)와 인사동 화재(지난달 17일)는 모두 정권 교체기에 발생한 사건이다. ‘정부 출범이 지연되더라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활동은 정상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이날 정 총리는 예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종로소방서를 찾아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국민의 생명, 신체,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봄철이 다가오는 만큼 특별히 화재 예방에 만전을 기해 달라”고 당부했다. 숭례문 복원 현장에서는 “복원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다시는 불행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관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남대문시장에서는 상인들에게 “엔저 때문에 힘들지 않으냐”고 묻고 “재임 기간 전통시장을 살리고 서민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시장에서 국산 돔 3마리, 콜라비 5개, 장갑 10켤레 등 모두 16만 원어치의 물건을 샀다. “불법사채 때문에 힘들다”는 말을 듣고 즉석에서 점검을 지시하기도 했다.
69세의 신임 총리는 이날 한 번도 피곤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원래 등산을 좋아한다. 한 번 걸으면 3시간 정도는 안 쉰다. 속도가 빠르진 않아도 안 쉬고 가면 결국 거북이가 이긴다”고 말했다. 이날 일정을 수행한 총리실 직원들 사이에선 “앞으로 체력을 길러야 할 것 같다”는 말이 돌았다. 경호팀에선 “총리를 따라다니다 보면 따로 운동을 안 해도 되겠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