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 논설위원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는 장밋빛 용산 개발의 민낯을 드러낸 ‘진실의 순간’이었다. 부동산 시장이 무너지자 자금 조달 길이 막히고 사업 밑천은 바닥을 드러냈다. 사업 전망은 2조7000억 원 흑자에서 4조6000억 원 적자로 바뀌었다. 자금 조달을 두고 최대 주주인 코레일과 민간 투자자 간에 갈등도 불거졌다. 최근 부도 위기에 몰리자 양측이 자본금을 늘리는 증자에 합의했으나 돈을 대겠다는 투자자가 선뜻 나서지 않고 있다.
용산은 어쩌다 뱀 꼬리로 전락했을까. 노무현 정부는 2006년 고속철도 개발 과정에서 불어난 코레일의 빚 4조5000억 원을 철도정비창 터 개발 이익으로 해결하는 용산역세권 개발 사업을 들고 나왔다. 2007년 한강 르네상스 사업을 추진하던 서울시는 이 사업에 서부이촌동 개발 사업을 포함시켜 숟가락을 얹었다. 사업 규모가 31조 원으로 불어나고 애꿎은 서부이촌동 주민들까지 사업에 말려들었다. 중앙정부와 서울시가 각본을 쓰고 코레일이 연출을 맡자 민간 사업자도 개발 이익을 보고 뛰어들었다.
코레일은 사업 주도권을 쥐고 공영개발 방식의 단계적 개발을 추진하고 있지만 앞날은 불확실하다. 용산 개발을 되살리려면 내부의 눈이 아니라 외부의 관점으로 사업 규모, 개발 방식, 수익성을 재검토하고 사업 표류의 책임까지 철저히 따져 물어야 한다. 사업성이 없다는 판단이 나오면 매몰비용에 연연하지 않고 원점으로 돌려 피해를 최소화하는 ‘플랜B’까지 고려해야 한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는 1981년 런던 템스 강변의 버려진 부둣가인 카나리워프 재개발에 착수해 ‘시티 오브 런던’과 함께 세계적 금융 허브로 키웠다. 대처는 이 일대를 ‘기업 투자지구’로 정하고 세금과 규제를 완화하는 과감한 해외 투자 유인책을 내놔 템스 강변을 세계 자본의 젖줄로 바꿨다. 영국을 버리고 세계를 선택해 영국을 살린 것이다.
용산은 명성은 뒤떨어지지만 접근성과 도시 기반시설은 버려진 부둣가였던 카나리워프보다 낫다. 용산도 시장 변화에 맞게 투자자 관점에서 사업을 재설계하고 위험을 분산해야 승산이 있다. 정보통신기술(ICT) 의료 교육 법률 콘텐츠 같은 지식기반 서비스업의 규제를 획기적으로 푸는 ‘창조경제 특구’로 만들어 해외 투자를 유치하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 최막중 서울대 교수는 “수익성과 함께 공공성을 대폭 강화한다면 특혜 시비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용산 개발은 아직 마침표를 찍지 않았다.
박용 논설위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