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론 빛고을론 마중물론… 전문가조차 “뭐가 뭔지”
한 시중은행에 마련된 미소금융재단에서 대출 희망자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 미소금융을 비롯한 햇살론, 새희망홀씨, 바꿔드림론 등 이른바 서민금융 4종 세트는 지원 자격과 목적이 비슷해 혼란스럽다는 지적이 많다. 동아일보DB
최근 양모 씨(52)는 한국자산관리공사 직원이라고 밝힌 사람의 전화를 받았다. 마침 급전(急錢)이 필요했던 그는 솔깃했다. 이 직원은 “우선 대부업체보다 낮은 연 20% 이자로 대출을 받고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던 국민행복기금이 올해 4, 5월에 안착되면 금리를 연 10%대로 낮춰주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금 대출을 받아야 나중에 금리인하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부추겼다. 양 씨는 고민 끝에 대출을 받기로 했다. 일단 수수료를 보내야 한다는 말에 양 씨는 200만 원을 부쳤다. 그러나 송금 직후 이 직원과 연락이 두절됐다. 양 씨는 서민금융을 사칭한 사람에게 사기를 당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
심지어 일부 글은 클릭하면 대부업체 홈페이지로 연결됐다. 최 씨는 한국자산관리공사 콜센터인 ‘서민금융 다모아’에서 서민금융 상품의 종류에 대해 웬만큼 알게 됐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상품별로 운영 주체가 달라 해당 기관에 다시 문의해야 했다. 최 씨는 “상담원의 설명을 여러 번 들었지만 상품 이름만 들어서는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며 “지원자격도 비슷해 어떤 것을 신청하는 게 좋을지 판단할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양 씨나 최 씨처럼 빚에 허덕이는 서민들이 복잡한 서민금융제도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상품 이름은 모호하고, 제도별로 운영 주체나 자격요건도 너무 복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민금융제도가 서민이 이해하기에 복잡하고 어렵다 보니 서민금융을 사칭한 대출사기 피해까지 속출하고 있다.
현재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신용대출을 해주는 서민금융 상품은 크게 네 가지. 금융권에서는 은행 휴면예금을 이용해 빌려주는 새희망홀씨와 저축은행 신용협동조합 새마을금고를 통해 빌려주는 햇살론이 있다. 여기에 대기업과 은행의 개별 미소금융재단이 창업·운영자금을 대주는 미소금융,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연 20%대의 고금리 대출을 10% 안팎의 대출로 바꿔주는 바꿔드림론이 있다.
이들 상품은 운영 주체 및 재원이 다를 뿐 지원자격이나 자금의 목적은 거의 비슷하다. 예를 들어 햇살론과 바꿔드림론은 지원자격이 겹친다. 연소득이 2600만 원 이하이거나 신용등급이 6∼10등급 이하면서 연소득이 4000만 원 이하인 사람이 대상이다. 새희망홀씨 역시 신용등급 5등급 이하나 연소득 3000만 원 이하인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돈을 빌려준다.
○ 1000만 원 이하 소액대출, 상품 이름만 15개
대부중개업체의 상담사까지 햇살론 모집에 가세하면서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햇살론을 취급하는 곳은 저축은행 신협 새마을금고 등 3700여 개에 이른다. 이들 회사는 상담사를 고용해 경쟁적으로 햇살론을 판매하고 있다. 돈을 떼여도 지역신용보증기금에서 대출금의 95%까지 보전 받는 점도 과잉 대출경쟁의 원인으로 꼽힌다. 일부 상담사는 “다른 금융회사에서 대출을 받지 못한 사람도 대출 받을 수 있게 해주겠다”며 고객을 모으고 있다. 햇살론을 알아보던 김모 씨(36)는 “대부업체가 광고하는 느낌이 들어 신뢰가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런 혼란을 틈타 미소대부 햇살대출 홀씨론 등 서민금융 상품과 이름이 비슷한 대부업체 상품까지 등장했다. 이른바 ‘짝퉁 서민금융’이다.
서민을 대상으로 한 소액대출은 더욱 복잡하다. 신용회복위원회는 개인워크아웃(채무재조정) 등을 1년간 성실하게 이행하면 저리(연 2∼4%)로 최대 1000만 원까지 담보 없이 빌려준다.
이런 종류의 대출 상품은 신복위가 자체적으로 재원을 조달한 ‘새출발마중물론’을 포함해 15개나 된다. 경북의 ‘낙동강론’, 광주의 ‘빛고을론’처럼 지방자치단체를 비롯해 여신금융협회 한국자산관리공사 등 여러 곳에서 재원을 조달해 소액대출 상품을 내놓고 있다. 이들은 모두 이름만 다를 뿐 대출 조건이나 목적은 비슷하다. 신복위는 “자금을 제공하는 곳마다 해당 기관의 이름을 넣은 대출 상품을 원하다 보니 상품명이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정무성 숭실대 교수(사회복지학)는 “혼란스러운 제도로 정보의 사각지대에 놓인 서민들은 또 다른 피해를 볼 수 있다”며 “기존 제도를 정비하지 않은 채 새 정부의 서민금융 대책이 나오면 혼란이 커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구본성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전문가들조차 헷갈릴 만큼 서민금융제도가 많아졌다”며 “서민금융을 접할 수 있는 채널은 많을수록 좋지만 한정된 자금과 인력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려면 큰 틀에서 조율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유영·한우신 기자 ab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