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훈 미래부장관후보 보름만에 사퇴… 해외파 인재들의 좌절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초대 장관 후보자가 4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는 마음을 지켜 내기 어려웠다”며 사퇴 의사를 밝힌 뒤 기자들의 질문을 거부하며 회견장을 떠나고 있다. 노컷뉴스 제공
박 대통령의 구상이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초대 장관 후보자의 사퇴로 처음부터 차질을 빚고 있다. 김 후보자는 1일 청문회 준비팀과 토론하면서 “꿈이 있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사흘 뒤인 4일 “여러 혼란상을 보면서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려던 꿈이 산산조각 났다”고 말했다. 부처의 출범조차 못 하도록 발목을 잡는 한국 정치문화에 대한 일격이었다.
김 후보자가 사퇴하자 김정한 전 국가수리과학연구소장, 한홍택 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서남표 전 KAIST 총장 등 해외파 한국인 인재의 영입 실험이 실패로 끝난 사례를 들어 해외 두뇌 수혈을 막는 후진적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김정한 전 소장
서상기 새누리당 의원은 “김 후보자가 전혀 납득할 수 없는 방송 장악을 이유로 부처 신설이 표류하는 상황을 보면서 크게 실망했을 것”이라며 “의미 없는 일에 단 하루도 허비하지 않으려는 미국적 사고방식으로 일찌감치 자리를 내던진 것 아니겠느냐”고 진단했다.
진정성을 의심하는 문화도 해외 인재들을 좌절시킨다는 지적이다. 세계적 수학자로 승승장구하다 2008년 국가수리과학연구소장으로 영입됐던 김정한 전 소장은 4일 “성공한 엘리트에게 ‘사회 공헌’을 고민하게 만드는 게 미국 사회의 가장 중요한 장점입니다. 저도 그런 고민을 안고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대부분 개인적인 성공 혹은 명예를 위해 돌아온 것이라고 오해하더군요”라고 털어놓았다.
김 전 소장은 국내에 복귀했을 때만 해도 “돈과 명예를 버리고 돌아왔다”는 칭송을 받았으나 연구소장 자리에 오른 뒤 각종 투서 사건에 휘말려 고초를 겪다 2011년 불명예 퇴진했다. 그는 “무거운 책임감에 의료백신과 교육사업에 뛰어든 빌 게이츠까지도 한국에 오면 정쟁의 대상이 될 것인가”라고 반문하면서 “김 후보자의 애국심이 훼손당한 것이 무척 안타깝다”고 말했다.
○ 잇단 좌절, 구조적 문제는?
과학계에서는 한홍택 전 KIST 원장이나 로버트 로플린 전 KAIST 총장도 비슷한 사례로 꼽는다. 이들은 모두 관련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권위가 있는 전문가이지만 한국의 대학 총장이나 기관장이 갖춰야 하는 ‘정치력’이라는 덕목은 제대로 갖추지 못한 면이 있다. 타협하고 조율하기보다 자신의 의지대로 밀어붙이다 조직 내의 집단적인 반발과 정체를 알 수 없는 투서를 통한 수장 흔들기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게 공통점이다.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는 오히려 인도, 중국의 고급 두뇌를 유치하기 위해 이민 제도를 개정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식경제 시대에는 어떤 인재를 확보하느냐가 국력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문화 사회를 만들자’는 구호만 요란하고 단순 노무 근로자에 대해서만 문호를 여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제는 재외교포가 문제가 아니라 외국인이라도 능력이 있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 할 텐데 국적 문제가 논란이 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 “세계적 인재에 대해서는 그 역할과 권한을 일정 부분 용인하는 사회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용석·정호재·지명훈 기자 nex@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