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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신보, 꽁꽁 얼어붙은 카자흐 신용보증제 녹였다

입력 | 2013-03-06 03:00:00

6개월 걸리던 보증절차 5∼15일로 단축… 현지 중소기업들 환호




카자흐스탄 수도 아스타나의 한 호텔에서 열린 ‘카자흐스탄 KSP 최종보고회’ 모습. 카자흐스탄 신용보증제도 담당 기관인 DAMU의 카낫 술탄가지예프 부회장(오른쪽)이 신용보증기금의 이종구 조사연구부 차장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신용보증기금 제공

영하 17도에 피부를 떼어낼 듯한 매서운 바람이 부는 카자흐스탄 수도 아스타나. 대형 건물이 밀집한 도심을 벗어나 차로 10분을 달렸다. 끝이 안 보이는 눈밭이 펼쳐졌다. 운전기사는 “여기가 진짜 카자흐스탄”이라고 말했다.

아스타나 외곽 지역에서 농기계 제조 공장을 운영하는 사니앗 마이바토바 씨는 최근 은행에서 4000만 텡게(약 3억2000만 원)를 대출 받았다. 그가 필요한 때 신속하게 돈을 빌리는 데는 정부가 운영하는 신용보증제도의 도움이 컸다. 마이바토바 씨는 대출 받은 돈으로 공장 가동을 위한 연료와 금속 재료를 구입했다. 덕분에 본격적인 농사가 시작되는 5월이 되기 전까지 그의 공장은 혹한을 이길 것이다.

○ 얼어붙었던 카자흐스탄 신용보증제도

“한국의 도움으로 중소기업 육성이라는 신용보증제도의 본질을 깨닫게 됐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한국의 중소기업진흥공단에 해당하는 DAMU가 기업에 대한 신용보증을 담당한다. 이슬람벡 카이르베코프 DAMU 신용보증부장은 “카자흐스탄이 제대로 된 신용보증제도를 갖춘 건 한국 덕분”이라고 말했다.

카자흐스탄에 한국형 신용보증제도 전수가 처음 논의된 건 2010년 7월이다. ‘제3차 아스타나 경제포럼’에서 카자흐스탄 경제개발통상부 차관은 안택수 신용보증기금(신보) 이사장을 만났다. 두 달 뒤 신용보증제도를 시작하는데 아직 미비한 점이 많으니 도와달라고 했다.

첫발을 디딘 카자흐스탄의 신용보증제도는 실제로 허점투성이였다. 우선 절차가 너무 복잡했다. 마이바토바 씨처럼 보증을 신청한 기업인은 DAMU뿐만 아니라 지방정부도 수차례 오가야 했다. 보증이 확정되는 데는 3∼6개월이나 걸렸다. 그렇게라도 보증을 받으면 다행이었다. 보증 대상이 ‘시설자금’에만 한정된 탓에 당장 공장을 돌릴 돈이 필요한 대다수 중소기업인들은 혜택을 받지 못했다. 결국 2010년 9월 제도가 도입된 후 1년 동안 고작 17개 기업이 보증을 받는 데 그쳤다.

○ 6개월 걸리던 보증이 5일 만에

유명무실한 신용보증제도 개선이 가능했던 것은 기획재정부가 주관하고 한국개발연구원이 운영하는 ‘경제발전경험 공유사업(KSP)’ 덕분이다. 2004년 시작된 KSP는 개발도상국들에 한국의 경제개발 경험을 전수하는 사업이다. 현재 33개 국가에서 공공기관과 연구소 등이 KSP 사업을 수행 중이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KSP를 통해 신용보증제도 전수를 공식 요청했다. 신보는 2011년 6월부터 활동에 나섰다. 이듬해 3월까지 9개월 동안 실태를 분석한 뒤 제도를 뜯어고치라고 조언했다.

DAMU는 즉각 제도 변경에 착수했다. DAMU는 2012년 6월부터 새로운 제도를 시행했다. 먼저 시설자금으로 제한했던 자금 용도를 운전자금으로 확대했다. 특히 중소기업을 위해 40만 달러(약 4억 원) 한도로 운전자금 전용 보증 제도를 신설했다. 보증 절차도 간소화해 40만 달러 이하 보증은 5일 안에, 그 이상도 15일 안에 마무리하도록 바꿨다.

새 제도가 시행된 후 6개월 동안 신규 보증을 받은 기업만 74개. 종전 20개월 동안 보증 받은 기업을 모두 합쳐도 40개에 불과했다. 6개월 동안 거의 2배로 늘어난 것이다. 카낫 술탄가지예프 DAMU 부회장은 “신보의 정책 제언 후 소액 보증이 늘었고 기업·은행·정부 간 신뢰도 구축됐다”고 말했다.

○ 카자흐 성장 도우면 한국에도 이득

자국의 경제 체질을 바꾼 KSP에 대해 카자흐스탄의 호응은 높아졌고 신보는 2012년 5월부터 2차 KSP 사업을 수행했다. 여기에는 기존 신용보증제도를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것에 더해 사회간접자본(SOC) 민자사업에 대한 보증, 혁신형 창업 활성화 방안 그리고 한국개발전략연구소가 담당한 혁신산업전략 수립 등 총 4개 프로젝트가 포함됐다. 지난달 25일 아스타나에서는 4개 프로젝트에 대한 보고회가 열렸다.

SOC 민자사업에 대한 신용보증제도 제언은 카자흐스탄 경제 체질 개선에 또 한 번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됐다. 카자흐스탄은 현재 사회기반시설 확충이 더디다. 신보는 정부 주도의 소규모 보증 확대 방안을 제시했다. 정부가 100% 자금을 출연하고 학교 등 국민 생활과 밀접한 소규모 시설을 대상으로 조달 금액을 100% 보증해 주라는 것. 단 카자흐스탄의 자국 은행과 건설회사만 참여시킬 것을 조언했다. SOC를 확충하면서 사업 효과는 자국민들에게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선진 경제 제도가 카자흐스탄 성장에 도움을 주는 것은 장기적으로 한국에도 이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카자흐스탄은 세계에서 9번째로 넓은 영토를 갖고 있다. 석유(매장량 11위), 우라늄(2위) 등 지하자원도 풍부하다.

카자흐스탄은 일자리를 주고 한국은 인력과 노하우를 제공하는 협력모델도 가능하다. 세릭 주망가린 지역개발부 차관은 “한국에서 은퇴한 전문가들이 카자흐스탄으로 온다면 경제 개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빈말이 아니다”며 “월급도 많이 주고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아스타나=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