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잭슨 폴록 ‘넘버 5’ (1948년, 120×240cm, 데이비드 마르티네스 소장)
“모든 인간에게는 일생 쓰고 죽어야 하는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
경북대 김두식 교수의 저서 ‘불편해도 괜찮아’에 소개된 이 말을 들었을 때, 너무 공감이 돼 속이 다 후련해졌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춘기에, 그 시기를 그냥 지나간 사람은 늦바람이 나서, 또 어떤 사람은 총량이 커서 평생 주어진 지랄을 쓰면서 산다는 것이죠.
이상과 현실, 마음과 몸이 따로 놀아 세상을 향해 반항한 작가, 잭슨 폴록. 그의 유명한 작품 ‘넘버 5’입니다. 물감을 뿌리고 튀기는 기법을 처음 시도했는데 당시 평론가들조차 “머리카락 뭉치, 카타르시스의 분열”이라며 난해해했던 작품이죠.
지금은 ‘넘버 5’가 최고의 경매가를 기록할 만큼 비싼 그림이지요.
잭슨 폴록이 이름을 알리기까지는 방황과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그가 어렸을 때 가출해 어머니가 다섯 아들을 어렵게 키웠습니다. 미술학교를 중퇴한 후 형들과 무작정 뉴욕에 갔지만 경제 공황기였던지라 매우 가난하게 지내야만 했죠.
▲ 물감을 뿌리며 작업 중인 잭슨 폴록
온몸을 움직여 캔버스에 물감을 뿌리는 ‘액션 페인팅’ 작업
폴록은 누구 못지 않게 미술에 대한 열정이 있었지만, 스스로 “기교도 뒤떨어지고 드로잉도 할 줄 모르는 작가”라고 자학했습니다. 또, “피카소, 그 녀석이 다 해 먹어서 할 게 없다”며 열등감을 표현하기도 했죠.
잭슨 폴록은 알코올 중독, 정신 질환, 동성애 성향으로 구설수에 자주 오르내렸습니다. 파티에서 식탁을 뒤엎는가 하면 친구 전시에서 그림을 찢으며 난동을 부리기도 했죠. 개인전이 성공을 거뒀지만, 정신질환에 시달려 화가이자 자신을 보살펴준 아내도 떠나갔습니다. 결국 만취 상태에서 교통사고로 44세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쯤 되면 캔버스에 물감을 끼얹고 뿌리며 작업한 그의 작업방식, 붓이 아니라 몸을 움직여 그리는 ‘액션 페인팅’이 그냥 나온 기법은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그의 아내는 “폴록이 물감을 흩뿌리는 작업은 괴로워서 내는 신음소리와 같았다”고 했는데, 아마도 상처를 치유하는 자기만의 방식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림을 사심 없이 보면 기분이 좋을 텐데, 사람들은 일부러 복잡한 것을 즐기나보다” 라고 한 잭슨 폴록의 말에서 세상을 향한 괴리감을 짐작해 봅니다.
짧은 생애를 반항적으로 살았던 폴록은 그에게 주어진 지랄 총량을 다 썼을까요? 누군가에게 지랄은 규정된 선을 뛰어넘는 시도이자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보는 귀한 시간일 겁니다.
억눌린 욕망의 에너지. 여러분은 어디에 어떻게 숨겨놓고 있나요?
글·이지현(‘예술에 주술을 걸다’ 저자 mimicello@naver.com)
<그림>
잭슨 폴록 ‘넘버 5’ (1948년, 120×240cm, 데이비드 마르티네스 소장)
글쓴이 이지현씨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