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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 한 우물 판 ‘全베버’… “이제 그를 비판해 볼 생각”

입력 | 2013-03-06 03:00:00

정년퇴임 논문집 ‘막스 베버 사회학’ 펴낸 전성우 한양대 교수




막스 베버 연구의 권위자인 전성우 한양대 석좌교수.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40여 년간 나처럼 험상궂게 생긴 베버라는 작자의 유령과 동고동락해 왔습니다. 그의 글이 워낙 어려워 저주를 퍼붓기도 하고 천재적 통찰에 환희를 느낀 적도 많습니다. 몹시 사랑하면서도 한편으론 꼴도 보기 싫은 사람이랄까요.”

전성우 한양대 석좌교수(65)는 국내 학계에선 ‘전베버’라 불릴 정도로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1864∼1920) 연구의 권위자다. 서울대에서 독문학을 전공한 그는 독일 괴팅겐대에서 독문학 박사과정을 밟다 베버의 논문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끌려 사회학으로 전공을 바꾼 이래 베버 연구에 천착해 왔다.

그는 지난달 한양대 정보사회학과 교수직에서 정년퇴임하고 이달 한양대 석좌교수로 취임했다. 마침 그의 베버 연구 40년을 결산하는 연구논문집 ‘막스 베버 사회학’(나남)과 함께 제자 11명이 그에게 헌정하는 ‘현대사회와 베버 패러다임’(나남)이 출간됐다.

프랑스의 에밀 뒤르켐과 함께 현대사회학의 창시자로 꼽히는 베버는 사회학은 물론이고 정치학 경제학 역사학 종교학 동양학까지 현대 인문사회과학 전반에 큰 획을 그은 인물. 지금도 ‘베버 르네상스’라고 부를 정도로 세계 도처에서 베버 연구가 활발하다. 독일에서는 내년 베버 탄생 150주년을 맞아 베버 전집 52권 완간에 도전하고 있다.

5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전 교수는 “베버가 씨름했던 합리성, 관료제, 방법론, 윤리론의 화두는 지금도 시의성을 잃지 않았다”며 ‘베버 르네상스’가 한국 사회에도 통찰력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모든 인간이 해결해야 할 원초적 문제는 생존, 자존, 공존”이라며 “카를 마르크스는 생존, 베버는 자존, 뒤르켐은 공존의 문제에 천착했다”고 설명했다. 베버가 종교사회학에 주목한 것이나 ‘직업으로서의 학문’과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통해 직업윤리를 중시한 것 역시 자존을 중시해서라는 것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개개인이 헌신해야 할 가치에 대한 인식이 너무 약합니다. 타인의 가치와 자율성도 충분히 인정해 주지 않고요. 예를 들어 정치인이라면 직업으로서의 정치에 충실해야지 왜 다른 분야까지 넘보는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그는 ‘베버 패러다임, 과연 존재하는가’(가제)라는 비판적 논문을 준비 중이다. 마르크스 패러다임이나 뒤르켐 패러다임에 필적할 ‘베버 패러다임’이 과연 존재하느냐는 회의를 느껴서다.

베버는 다른 곳이 아닌 서유럽에서 자본주의가 발생한 원인에 대해 금욕주의적 개신교가 결정적 윤리적 기반을 제공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전 교수는 이런 베버의 가정과 다르게 전개된 현대사의 궤적을 살펴보며 베버의 논지를 비판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만약 베버와 마주할 기회가 있다면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지 묻자 노교수의 표정이 사춘기 소녀처럼 발그레해졌다. “아이고, 질문이 아주 재밌네! 이렇게 묻겠어요. ‘당신이 현재 동아시아의 자본주의를 목격한다면 어떤 진단과 전망을 내리시겠소?’라고.”

그는 “동아시아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서구 자본주의 발전과 함께 출현한 개인주의 자유주의 같은 가치를 보완할 동아시아적 가치체계가 나올 수 있을지 궁금하다”고 덧붙였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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