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조직법 표류 후폭풍 해양부-미래부 갈 공무원들… 업무 빠진채 눈치보다 퇴근 새 학기 벌써 시작된 교과부… 올 시행정책 구상조차 못해
해양수산부로 전보 신청을 한 공무원 A 씨는 요즘 ‘개점휴업’ 상태다. 해양부로 자리를 옮길 공무원들은 최근 주요 업무에서 배제됐기 때문이다.
오전 8시 반에 정부세종청사로 출근하는 그는 동료들 눈치를 보며 멀뚱히 앉아 잡무를 처리하며 오전 시간을 보낸다. 점심은 다른 부처 동기들과 약속을 잡아 외부에서 먹는다. 동료들이 A 씨를 ‘떠날 사람’으로 여긴 지 오래라서 같이 밥을 먹기가 부담스럽다.
오후에도 특별히 할 것이 없다. 빨리 저녁이 오기만을 기다리지만 퇴근 이후에도 마땅히 할 일이 없어 혼자 사는 집에서 시간을 때우기 일쑤다. A 씨는 “해양부로 가겠다고 손을 든 마당이라 눈치가 너무 보이고, 일도 주지 않아 며칠째 일을 거의 하지 못했다”면서 “빨리 해양부로 가서 제대로 된 일을 하며 전문성을 살리고 싶다”고 말했다.
미래창조과학부로 옮길 예정인 방송통신위원회 소속 한 과장급 공무원은 “연초에 1년 업무계획을 세우고 1년 동안 차근차근 추진하는데 지금은 업무계획 수립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많은 직원이 서울에서 인사청문회 준비와 업무보고에 매달리면서 업무 공백이 2주 넘게 이어지고 있다. 농식품부의 한 과장급 공무원은 “요즘 내 업무는 아예 손도 못 대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과학기술부 역시 새 학기를 제대로 맞이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교과부는 교육과 과학 분야가 갈라지는 상황까지 겹쳐 있다. 교과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학교 운영은 각 시도 교육감이 한다지만 조직과 인사가 정리되지 않아 대통령 공약사항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행할지에 대한 방향도 불분명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대입 간소화 등의 큰 그림은 물론이고 올해 펼칠 정책을 구상하기도 힘든 상황이라는 얘기다. ‘처’로 격상될 식품의약품안전청 공무원들의 답답함도 커지고 있다. 정부조직법 처리가 늦어지면서 식품안전관리 일원화, 부정불량식품 척결 등 신규 사업 추진이 미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식약청 관계자는 “식약처장 임명은 장관 임명이 다 끝나고서야 이뤄지지 않겠느냐. 다른 부처들보다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식약청으로의 이동이 예상되는 보건복지부 공무원들도 어수선한 분위기다. 복지부 관계자는 “복지부는 연말에 세종시로 내려가고 식약청은 충북 오송에 있는데 아직도 어디 소속이 될지 모르는 공무원들은 집 걱정 등으로 업무에 집중하기 힘든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위원장 선임이 늦어지고 있는 공정거래위원회는 주요 정책 추진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불공정거래 조사는 각 부서에서 진행하고 있지만 경제민주화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관련 법안을 개정하는 작업은 공정위원장 부재와 국회 공전 등으로 손도 대지 못하고 있는 것. 공정위의 한 직원은 “지금 같은 상황이 더 이어진다면 하반기나 돼야 경제민주화 관련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길진균·김도형 기자·세종=유성열 기자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