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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대통령 카리스마 살리기 위해 정열의 붉은색 강조했어요

입력 | 2013-03-07 03:00:00

박근혜 대통령 한복 지은 김영석 디자이너




취임식 날 김영석 씨가 제작한 매화문양 두루마기를 입은 박근혜 대통령. 뉴시스

지난달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식 직후 서울 광화문광장에 나설 때 선보인 화려한 붉은 두루마기를 보는 순간 기자는 디자이너 김영석 씨(50)의 작품임을 직감했다. 그러나 확인차 전화를 걸자 김 씨는 “내가 만들진 않았다”며 말끝을 흐렸다. 국내 정상급 한복디자이너 사무실들을 수소문해봤지만 역시 같은 대답. 박 대통령은 외국 정상들을 초청해 가진 만찬 때 또 다른 디자인의 자주색 치마저고리를 선보였고, 기자는 혹시나 싶어 재차 확인 전화를 걸었다. 어렵사리 김 씨의 지인을 통해 “취임식 때 공연히 화제가 되는 걸 원치 않아 언론에 알리지 말자고 결정했었다”며 “사실과 다른 추측 기사가 있을 수 있어 확인을 해 드리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는 얘기를 들었다.

김윤옥 여사 한복도 디자인

미국 디자이너 톰포드처럼 멋진 옷차림에 슬림한 체형이 인상적인 디자이너 김영석 씨는 따로 인터뷰용 사진을 찍는 것을 한사코 사양했다. “공연히 화제가 되는 게 부담스럽다”는 이유였다. 전통한복김영석 제공

김 씨는 사실 ‘청와대 한복’과 인연이 있는 인물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부인인 김윤옥 여사가 주요 국제 행사 때마다 입었던 한복도 주로 그의 작품이었다. 한바탕 법석이 지난 후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 자리 잡은 그의 매장, ‘전통한복 김영석’에서 지난달 27일 만난 그는 한복 디자이너라기보다는 서양복 디자이너 같은 모습이었다. 슬림한 양복에 샹들리에를 모티브로 한 듯한 화려한 브로치로 멋을 낸 모습이 한복 디자이너라는 직업과 묘한 조화를 이뤘다.

―외국에선 취임식 패션을 완성한 사람들이 스타가 되기도 하죠. 우리도 그런 대접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데 왜 처음엔 사실을 숨기셨는지.

“우리나라 정서가 그렇잖아요. 옷이 이슈가 되면,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인 부분을 보는 시선이 많고…. 서양과는 국민적 정서가 다르다보니 부담스러웠어요.”

―박 대통령이 입은 한복 두 벌 덕분에, 갑자기 한복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졌어요.

“화제가 될 것이라고는 예상했지만, 한복 업계 전반에 이렇게 큰 파급효과가 있을 줄은 몰랐어요. 현재 한복 시장이 정말 많이 힘든 편이에요. 그런데 우리 거래처 사람들만 봐도 박 대통령이 한복을 입은 모습에 ‘한복 시장에 희망이 비치는 것 같다’고 얘기하더라고요.”

―취임식 날 입었던 박 대통령 한복은 모두 화려한 느낌이었어요. 매화 무늬가 가득 새겨진 붉은 두루마기나 무궁화가 새겨진 자주색 한복 등 강한 색을 많이 썼죠. 박 대통령의 양장 차림을 보면 소박한 취향이신 듯한데 화려한 한복을 불편해하진 않았나요.

“워낙 검소하시다보니 처음엔 한복도 그런 디자인 쪽으로 문의가 왔어요. 그래도 중요한 날, 수수한 것만 정답은 아니라는 생각에 제 콘셉트대로 화려하게 제작했죠. 그래서 대통령께서 결국 입으실지 취임식 당일까지 확신이 없었어요.”

―김윤옥 여사의 한복도 지으셨죠. 외국에서 열린 한 행사에 김 여사께서 참석했는데, 화려한 한복 덕분에 참석자들이 기념사진 촬영 때 가운데 자리를 양보했다는 에피소드가 전해지던데요.

“김 여사께선 청와대에 들어가시기 전부터 가족행사 때 저희 집에서 한복을 맞춘 단골이었어요. 대통령 재임 기간 선보인 한복 패션 스타일이 다양하다보니, 상당히 옷을 많이 맞추신 걸로 오해하던데 주로 기존에 갖고 계셨던 옷을 다시 손질하고 각기 다른 색으로 매칭해서 새 한복처럼 느껴졌을 거예요.”

―박 대통령의 취임식 한복은 화려하다는 호평이 대세였지만, 붉은색이 지나치게 강조된 것 같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퍼스트레이디가 아닌 대통령이다 보니,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강렬한 색상이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두루마기 아래 매치한 깊은 청색은 붉은색과 함께 태극기를 상징하는 색이라 쓰게 됐고요.”

―취임식 날 광화문에서 열린 시민 행사 때 쓰인 복주머니 365개도 직접 제작하셨죠.

“제작 의뢰가 들어와 설 연휴 직후부터 작업했어요. 저희 직원 수가 10명 정도다 보니 스태프끼리만 만들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죠. 각 시도에서 지원한 자원봉사자들이 도와줬어요.”

―박 대통령은 취임식 날 한복과 함께 평소엔 좀처럼 하지 않던 화려한 머리핀과 귀고리 등도 선보였어요. 이 스타일도 직접 코치하신 건지.

“화장은 앞으로만(얼굴에만) 하는 게 아니라 뒤로도 해야 한다고 평소 생각해 왔어요. 뒷모습도 완벽하고 조화로웠으면 했죠. 그래서 나비 문양 뒤꽂이를 함께 보냈어요. 실제 행사 때는 다른 헤어핀을 착용하셨지만 그 역시 잘하신 선택이었다고 봐요.”

―박 대통령이 수십 년간 고수해 온 올림머리 덕분에 한복 패션이 가장 잘 어울렸다는 평가가 많아요. 육영수 여사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고 말하는 중장년층도 봤어요.

“육 여사께서 활동하던 1970년대만 해도 한복이 지금처럼 명절이나 결혼식에서만 입는 특수한 옷이 아니었어요. 어머니들이 집에서도 즐겨 입던 생활 의복이었죠. 육 여사님이나 박 대통령 모두 한복과 잘 어울리는 스타일이죠.”

―탤런트 심은하 씨, 전 KBS 아나운서 노현정 씨 등 유명인들을 고객으로 거느리고 계시죠. 빠른 시간 내에 유명인사들이 즐겨 찾는 ‘핫’한 디자이너가 됐는데 비결이 뭔가요.

“첫 연예인 고객은 고현정 씨였어요. 저희 집을 찾는 모든 고객이 VIP죠. 컬러가 튀면 디자인을 심플하게 하는 등 절제미를 유지하는 걸 고객들이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30대 중반 넘어 인생길 바꿔

김 씨는 30대 중반이 넘은 나이에 이벤트 기획자에서 한복 디자이너로 변신한 독특한 이력을 가졌다. 타고난 재능과 노력 덕에 10년 안에 정상급 디자이너가 됐다.

―어떻게 한복 디자이너라는 길을 선택하게 되셨나요.

“경복궁에서 한복 명인인 구혜자 선생님께 일주일에 한 번씩 취미삼아 배운 게 발단이었어요. 이벤트 회사를 운영하면서 쉬는 날 한 번씩 가기 시작한 게,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결국 이렇게 직업이 됐네요. 어려서부터 한복에 관심이 많았어요. 어려서부터 할머니, 어머니가 옷을 짓고 남겨 놓으신 천 쪼가리를 이유도 없이 모으는 버릇이 있었어요.”

지금처럼 삼청동이 뜨기 전인 1999년, 김 씨는 첫 한복집을 삼청동에 냈다. 그러다 2005년, 입소문을 들은 신라호텔의 러브콜을 받고 신라호텔 아케이드에 입점했다.

―이벤트 기획자였다는 점이 한복 디자인 작업에도 도움이 되나요.

“전시회나 한복 쇼를 할 때 이벤트 업체 담당자들과 얘기하다보면 대번에 ‘이 일을 하신 적이 있냐’고 물어 와요. 스케일이 큰 작업을 용기 내서 시도할 수 있게 된 것도 옛 경험 덕분이겠죠.”

그는 지난해 덕수궁의 역사를 현대적인 상상력으로 재해석하는 ‘덕수궁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일본의 미디어 설치작가 미야지마 다쓰오와 함께 서울 가회동의 한옥에서 ‘전통한복-설치미술전’을 열기도 했다. 최근까지는 지난달 26일부터 6월 23일까지 대구미술관에서 열고 있는 ‘DNA(Design and Art)전’에 출품할 족두리들을 제작했다. ‘족두리에 대한 100가지 해석’이라는 주제로 족두리 100개를 산호 비취 진주 등 귀한 재료들로 꾸몄다. 그는 “취임식 한복 준비와 전시 준비 기간이 겹쳐 정신이 없었다”고 말했다.

―앞으로 목표는….

“서양 의복은 한 시즌만 지나도 가격이 뚝 떨어지는데, 한복은 시즌성이 없이 늘 정체되기 마련이니 발전이 더디죠. 몇 해 전 이탈리아 유명 브랜드 ‘프라다’가 주최한 트랜스포머 전시회를 봤는데, ‘이런 창의성 덕분에 명품이 되는구나’ 싶었어요. 프라다라는 브랜드가 1990년대 초중반만 해도 ‘낙하산 재질의 심플한 엄마 옷’이라는 인식이 강했거든요. 저도 그때 프라다 바지 많이 입었죠.(웃음) 그러나 지금은 기능보다 디자인으로 유명한 브랜드가 됐으니 얼마나 노력을 많이 했겠어요. 저는 해외여행을 갈 때마다 전통 의상 맞춤집부터 찾아가는데 남의 전통 문화부터 잘 이해한 뒤 우리 전통을 논하는 게 맞겠죠. 조선시대 때 유교적 철학이 가미되면서 단순화된 한복 디자인을 좀더 다양하고 고급스럽게 계승해 나가는 게 목표입니다.”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