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보다 더 먼 어딘가로 가려는 꿈을 자주 꾸었다. 그곳은 실제의 거리감도 마음의 거리감도 모두 적당한 곳이면 했다.
사람들은 자주 삿포로를 찾는 나에게 묻기도 했다.
“왜 삿포로인가요?”
나는 대답했다.
“만약 길고 긴 소설을 쓰고 싶을 때, 삿포로는 나에게 근사한 첫 문장을 안겨줄 것 같거든요.”
“만약 삿포로를 사람에 비유한다면 어떤 사람인가요?”
나는 대답한다.
“나를 절대 불안하게 하지 않을, 그런 사람이요.”
어느 카페 구석지에 앉아 가져온 일들을 들추고, 나무 위에서 갑작스레 떨어지는 눈덩이처럼 나에게 들이닥친 몇 줄의 시들을 적어나가는 것. 그러기에 삿포로의 기운은, 충분히 자극적이며 안성맞춤이다. 그곳은 어느새 익숙해지는 속도와 함께 편했고, 어느새 꽤 묵직한 향수(鄕愁)를 쌓을 수도 있었다. 아마도 그곳이 ‘나’라는 사람과 닮았다는 이상한 교감 같은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삿포로에 있을 때만 내가 나에게 닿아 있다는 느낌, 그곳에서 내가 살아갈 큰 힘을 구걸할 수 있다는 느낌들. 그 모두가 나에겐 기쁨이다.
그곳에 다시 왔다. 불안정하게 흔들렸던 ‘나’를 잠시 멈추고 ‘공기’를 주입하러 온 것이다.
삿포로를 여행하다가 문득 휘몰아치는 감정의 무언가를 선물 받더라도, 가만히 그것을 받아들이자.
시인 이병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