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술도가에 들렀다. 꽤 오랫동안 꿈꾸어 왔던 일이었다.
오타루의 대표 청주(淸酒)인 <기타노호마레․ 北の譽>를 만드는 술도가는 입구에서 풍기는 외관부터 장엄했다. 아마도 이름이 주는 뉘앙스도 한몫했겠지만 겨울 동안 내린 눈을 쓸어 양옆에 쌓아놓은 길이 그러했고, 쌀 찌는 증기가 오래된 술도가를 휘감고 있는 모습이 특히 그러했다. 물론 그 흰색의 풍경들을 더 진하게 완성시키고 있는 건 그 집을 지키는 듯한 개 한 마리와 함께 산책을 나온 어떤 노인의 모습이었다.
엄청나게 쌓인 쌀 부대와 그 쌀을 씻기 위해 만들어진 기계들 틈을 지나, 쌀을 찌고 있는 인부들과 눈인사를 나누었다. 그들의 눈빛은 장인의 에너지로 반짝였고 묵묵했으며 꽤 묵은 듯한 정이 느껴졌다.
몇 해 전 삿포로의 어느 술집에서 한 잔을 시켜 먹은 적 있었던 술, 그 술을 만드는 술도가를 찾아오게 될 줄은. 130cm의 흰 눈을 지붕 머리에 이고 있는 술도가에 들어서면서 나는 조금 신명이 났고, 130년이 넘는 술도가의 고집스럽고 오래된 술 빚는 방식들 앞에서 그냥 마냥 좋았다.
방문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그곳에서 만든 술들을 맛보겠냐는 괜찮은 제안을 받았다. 한 잔, 반 잔, 그리고 반의 반 잔을 마셨다. 이상할 정도로 강하게 물 맛이 났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술은 사람과 함께 마시는 것이고 대화가 곁들여지는 것이고 또 게다가 안주가 필요한 것이고 또 거기에 분위기와 인생의 희노애락까지 합쳐지는 것이니 시음이 주는 즐거움 정도로는 술의 근본에 닿을 수 없노라고.
어느 땅을 밟고 있느냐에 따라 우리의 심장도 박동수가 달라진다. 어디를 그리워하느냐에 따라서도 마찬가지. 나는 오늘밤, 나에게 술 한 잔을 권하려고 한다. 그리고 130년의 전통을 지켜온 그들과 건배를 할 것이다. 그러면 창밖으로는 또 그립게 그립게 눈이 나릴 것이고, 나는 그 눈의 우아함과 쓸쓸함이 시키는 대로 조금 마음을 적실 것이다.
시인 이병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