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서울 버스정류장 노선도에 버스 진행 방향을 표시한 빨간색 화살표 스티커(오른쪽 위 사진)를 붙이던 ‘화살표 청년’ 이민호 씨가 현대자동차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이민호 씨 제공
관계 공무원이나 버스회사에서 하는 줄 알았던,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그 빨간색 화살표 스티커는 당시 대학생이던 이민호 씨(24)가 2011년 8월부터 길게는 하루 15시간씩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서울 시내 버스정류장 노선도에 붙인 ‘작은 친절’이다. 이 씨는 “내가 좀더 발품을 팔면 사람들이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자전거 두 바퀴에 몸을 실고 이 씨가 800여 곳의 정류장에 붙인 1cm 남짓한 빨간색 화살표 스티커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알려졌다. 이 씨는 지난해 5월 박원순 서울시장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여기까지는 ‘화살표 청년’의 시즌 1이다.
이 씨는 대기업 4, 5곳의 사회공헌파트에 입사원서를 냈다. 다른 취업준비생들처럼 해외 연수나 내세울 만한 공인어학시험 점수도 없었다. 하지만 헌혈은 기본, 사후장기기증서약에다 주말이면 지적장애인들에게 스케이트나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 주는 등 ‘봉사 스펙’ 만큼은 자신 있었다. 물론 공업고등학교 재학 시절 전교 10등 안에 들었고 대학 학점은 4.5점 만점에 4.42점을 받을 정도의 성실함도 갖췄다. 하지만 세상이 원하는 스펙이 없던 이 씨의 이력서는 서류전형 문턱조차 넘기 힘들었다.
낙담을 거듭하던 이 씨는 올해 초 현대자동차 인재채용팀으로부터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는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이 씨는 서류전형을 면제받고 인·적성검사와 2차례의 면접을 치른 뒤 지난달 23일 최종 합격통보를 받았다. 허정욱 현대차 인재채용팀 과장은 “이 씨의 봉사 스펙은 ‘함께 움직이는 세상’이라는 현대차의 사회공헌철학에 부합해 스카우트에 나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2주간의 직장 내 직무교육(OJT)이 끝나면 현대차가 국내외에서 진행하는 각종 사회공헌사업을 지원하는 업무를 맡게 된다. 전문학사 학위를 가졌지만 이 씨가 하는 일은 4년제 대졸 신입사원들과 다르지 않다. 이 씨의 선배인 김세훈 현대차 복지지원팀 과장은 “사회공헌 업무는 이 씨처럼 힘든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이웃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굳은 다짐과 진정성이 가장 중요한 자격 요건”이라며 “이 씨가 4년제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화살표 청년이 다니는 회사 앞 버스정류장에는 화살표가 붙어있을까. 이 씨는 “회사 앞 광역버스 노선표에는 빨간 화살표가 없더라”며 “직무에 적응하는 대로 주말에 틈틈이 화살표를 붙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