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희 논설위원
‘여성’ 안 보이는 여성대통령 시대
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 ‘여성인재 10만 명 양성’을 약속했고 지난해 10월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여성본부 출범식에서는 ‘여성성(性) 부족’ 논란을 “여성을 요직에 중용하겠다”는 말로 돌파했다. ‘공공기관 임원 여성비율 30%’라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방안에 대해 너무 급진적인 목표라는 불만이 나왔을 정도니 여성들이 한껏 고무될 만했다. 필자는 지난해 말 칼럼(12월 22일자)에서 동북아 유교문화권에서 “여성대통령은 미국 흑인대통령에 맞먹는 세계사적 의미를 가질 것”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박 대통령이 마거릿 대처처럼 ‘총리가 여자인 것으로 충분하다’며 여성각료를 쓰지 않는 우(愚)를 범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노무현 정부 첫 내각에서 4명의 여성 장관이 웃는 장면은 국민 마음속에 ‘역사는 진보한다’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여성을 홀대한다는 비판을 받았던 이명박 정부도 인수위원장과 수석비서관에 여성을 기용했다. 김대중 정부는 여성장관을 많이 임명했고 여성비서관을 4명이나 썼다. 장관급 실장과 수석비서관에 여성이 한 명도 없는 정부는 노 정부 이후로 이번 정부가 처음이다.
시중에는 박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커나갈 가능성이 있는 여성인재를 꺼린다는 말까지 나돈다. 박 대통령이 ‘닮고 싶다’고 칭송했던 영국 엘리자베스1세는 자신은 보석으로 화려하게 치장하고 모든 시녀에게는 검은색 옷만 입게 했다. 자신 말고는 어떤 여성도 돋보여서는 안 됐던 것이다. 박 대통령이 이렇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박 대통령 주변에서 여성 측근을 떠올리기 힘들다. 혹자는 박 대통령과 가까웠다가 저격수로 돌변한 전여옥 전 새누리당 의원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하는데 박 대통령의 품성으로 볼 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보단 과반의석이 무너질까봐 여성 의원을 발탁할 수 없었던 게 아닐까.
女임원 발탁에 악영향 줄까 걱정
어쨌거나 박 대통령이 여성을 발탁하기 위해 충분히 노력했는가 하는 점은 회의적이다. 공식 인재풀을 쓰지 않고 자신이 아는 범위 내에서 사람을 쓰다보니 마땅한 인물을 찾지 못한 것 같다. 걱정스러운 것은 이번 인사로 여성인재를 발굴해야 하는 민간기업과 공기업의 부담감이 한결 줄었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은 자신도 모르게 공공기관에서 무리하게 임원급 여성을 찾을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를 주고만 것이다. 한국 여성권한 척도가 108위에 머무는 주된 이유는 고위직 여성이 적기 때문임을 박 대통령도 잘 알 것이다. 여성대통령을 맞았음에도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는 말을 들으며 세계여성의 날(8일)을 맞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