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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송평인]모문룡의 후예, 북한의 중국 해적

입력 | 2013-03-07 03:00:00


북한 평안북도 철산반도 앞바다에 중국 해적들이 출몰해 북한 어민을 약탈한다는 보도(본보 5일자 A1면)를 접하니 중국 명청(明淸) 교체기의 모문룡(毛文龍)이 떠오른다. 당시 지금의 평안북도 지역은 명나라 유민이 피란을 오고 후금이 이들을 쫓아 내려오는 바람에 전장으로 변했다. 조선의 주권은 심각히 침해되고 조정의 권한도 거의 미치지 못했다. 모문룡은 철산반도 앞바다의 가도(1島) 혹은 피도(皮島)라고 불린 섬을 근거지로 삼아 명-조선-후금을 오가는 상선들에 통행세를 받아내며 해상왕 행세를 했다. 본인은 해외 천자(天子)로 자처했다지만 사실상 해적의 우두머리였다.

▷조선의 인조반정은 후금에 큰 타격이었다. 인조는 광해군과는 달리 친명반만(親明反滿)을 표방했다. 후금은 광해군 때는 조선을 통해 명과 교역할 수 있었으나 그것이 어려워졌다. 조선에서 중국 산둥반도에 이르는 해로는 모문룡이 장악하고 있었다. 명나라 하급장교였던 그는 명나라 유민인 부하들을 게릴라로 삼아 가끔 후금의 후방을 교란하기도 했다. 명은 모문룡의 비열한 짓을 잘 알고 있었지만 후금을 괴롭혀주는 대가로 눈을 감아줬다. 후금이 병자호란을 일으킨 명분은 조선을 제압하기 위해서지만 모문룡으로부터 가도를 빼앗아 교역의 샛길로 삼으려한 속셈도 있었다. 후금이 모문룡의 진지를 습격했을 때 그곳에는 엄청난 양의 비단과 은이 쌓여 있었다고 한다.

▷지도로 북한 철산반도 앞바다를 보면 다른 곳과 달리 섬이 많다. 많은 섬과 복잡한 리아스식 해안은 해적에게는 안성맞춤이다. 그곳에 모문룡 일당의 후예라고 할 만한 중국 해적이 다시 설치고 있는 것이다. 중국 해적이 활개를 쳐도 북한은 제압하지 못하고 있다. 낡은 북한 경비정으로는 쌍발 엔진을 단 재빠른 중국 해적들의 배를 추적하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북한 당국은 또 탈북을 우려해 북한 어선의 속도는 경비정 속도 이하로 묶어 놨다. 그러니 북한 어선은 중국 해적들이 달려들면 꼼짝없이 당해야 하는 무방비 상태다.

▷16세기에서 18세기까지는 카리브해의 해적이 유명해서 오늘날 할리우드 영화의 소재까지 됐지만 지금은 소말리아 해적이 가장 악명 높다. 소말리아에는 1980년대 내전으로 중앙정부가 붕괴되고 해경과 해군이 바다의 통제력을 잃으면서 해적이 설치기 시작했다. 처음에 어민들이 뭉치고 무장한 이유는 외국 어선으로부터 자국 어장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다가 외국 배에 탄 사람들을 인질로 잡아 돈을 요구하면 일확천금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너도나도 해적질에 나서 외국인 협상가까지 동원하는 국제 비즈니스로 변질됐다. 나라가 제 구실을 못하면 육지에서는 산적이 날뛰고 바다에서는 해적이 설치는 것은 동서와 고금이 똑같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