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성화고 3학년 유채린-박수진-이단비 양의 ‘신나는 봄날’
고교 2학년때 한화투자증권에 채용된 여고생들. 왼쪽부터 유채린(서울여자상고), 박수진(신정여자상고), 이단비(인천세무고) 양.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이번이 첫 사례라 아직은 단언할 수 없지만 비슷한 사례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화그룹 684명을 비롯해 중소기업까지 총 700여 명의 특성화고 2학년생들이 처음으로 졸업하기도 전에 기업에 채용됐다. 다른 기업들도 올해는 2학년생 잡기 경쟁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 열일곱 살에 취업에 성공하다
기다리던 연락은 지난해 9월 7일 오후 7시에 왔다. 유 양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거실 소파에 털썩 누웠다. 휴대전화를 열었다. 문자는 아직 없다. 휴대전화를 손에 꼭 쥔 채 이리저리 뒹굴기만 두 시간째. 전화기에 이상이 있나 싶어 전원을 몇 번이고 껐다 켰다. 문자 수신을 알리는 진동음이 울렸다. 벌떡 일어나 문자수신함 버튼을 누르자 ‘한화투자증권. 2012년 채용전제형 고교인턴 2차 면접 합격을 축하드립니다’가 떴다.
유 양은 문자 내용을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합격 문자가 확실했다. 쓰러지듯 소파에 다시 누웠다. 하늘을 향해 두 발을 치켜든 채 동동 굴렀다.
“그날 집에 혼자 있었거든요. 엄마한테 전화해 목소리 탁 깔고 ‘나, 떨어졌어’라고 했어요. 위로해 주시더라고요. ‘뻥이야. 붙었어’라고 정정한 뒤 엄마랑 꺅꺅 소리를 질렀죠.”
박 양도 당시 기억이 생생하다. 하굣길에 합격 문자를 받고 집까지 한달음에 달려갔다. “평소에 잘 못 뛰는데 그날은 힘이 하나도 안 들더라고요.” 걸어서 족히 20분은 걸리는 거리였다.
한화증권은 성적보다 태도와 자신감 등 인성이 합격 여부를 갈랐다고 설명했다. 이동준 한화증권 인사팀 매니저는 “처음에는 회사에서도 반신반의해 고3과 고2를 함께 뽑았는데 고2의 경쟁력이 뛰어나다는 걸 확인해 올해는 고2만 따로 뽑을 계획이다”며 “우수한 인재를 다른 회사보다 2년 먼저 확보할 수 있다는 게 고2 인턴십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 뚜렷한 목표의식에 노력은 저절로
4일 인천 부평구 상정로 인천세무고등학교에서 열린 입학식 겸 개학식 현장. 전교생 970명 앞에 이단비 양이 섰다. 신입생 환영사를 맡은 것이다. 학교에서 단 두 명인 재학생 취업자 자격이었다.
세 학생 모두 입학할 때부터 취업에 대한 열망이 강했다. 인문계 고등학교 학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알게 모르게 당한 설움을 떨쳐내고 싶었다. 넉넉지 않은 집안 사정도 취업을 서두르게 했다.
▼ “평소에 선생님과 신뢰 쌓아놓으세요. 뭐든지 적극적으로 손들고 나서세요.
아, 공부는 기본이죠!”▼
목표가 뚜렷하니 노력도 뒤따랐다. 고교에 진학한 뒤부터 이들은 틈날 때마다 각종 자격증시험을 준비했다. 2학년 1학기가 끝나기 전에 딴 자격증만 전산회계, 컴퓨터 등 서너 개. 모두 학업성적도 우수해 전교에서 1, 2등을 다툰다.
이 양은 입학할 때부터 증권사 입사를 꿈꾸며 증권투자상담사 펀드투자상담사 자격증을 준비했다. 3학년 언니들이 주축이 된 교내 금융투자 동아리에 들어가 틈틈이 공부를 해뒀다. “저는 자부심을 갖고 특성화고에 다니고 있는데 친척들은 왜 ‘상고’에 갔냐며 뭐라고 하시더라고요. ‘왜’에 대한 답을 빨리 보여드리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죠.” 증권투자상담사는 지난해 11월 4전 5기 만에 합격했다. 올 1월에는 펀드투자상담사 자격증도 땄다.
○ “고3은 덤, 더 준비할래요”
세 학생은 바늘구멍을 뚫었다는 사실이 기쁘면서도 고2를 대표한다는 책임감도 느끼고 있었다. 진로가 결정됐다고 느슨해지지 않고 올 한 해 자기계발에 열중해 “괜히 미리 뽑았다”는 말이 안 나오도록 하겠다는 각오다.
가장 모자란다고 생각하는 건 외국어. 자격증과 금융투자 관련 지식은 자신 있지만 인문계 고등학교 학생이나 대학생에 비해 외국어를 공부할 기회가 적었기 때문이다.
유 양은 중국어 공부에 한창이다. 청소년중국어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아침저녁으로 중국어 교재를 달고 산다. “다들 영어는 잘할 거 아니에요. 그래서 저는 중국어로 승부를 보려고 해요.”
박 양은 신문 읽기를 택했다. “경제를 알려면 우리나라와 외국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어야 하겠더라고요. 매일 신문을 정독하고 궁금한 내용은 책도 사서 봐요.”
인터뷰가 끝날 때쯤 이들은 특성화고 후배들에게 취업에 성공할 수 있는 비법을 전해주고 싶다고 했다. 여고생들의 입에서 놀랄 만큼 ‘실용적’인 팁이 쏟아졌다.
“가장 중요한 건 평소에 선생님과 신뢰를 쌓아놓으라는 거예요. 선생님들의 추천으로 입사 기회를 잡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러려면 학교에서 뭐든 직책을 맡아두는 게 좋아요. 작은 일이라도 뭐든지 손들고 적극적으로 나서세요. 아, 공부는 기본인 거 다들 아시죠?”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