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면 모자란 것만 못하다는 비극의 사례가 독일 문학의 최고봉이라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의 가문이다. 부친(父親)의 맞춤형 교육으로 ‘만들어진’ 천재 괴테는 41세에 얻은 늦둥이 아들도 자기가 받았던 교육방식으로 키우려고 애썼다. 괴테의 아들은 학습, 진학, 취직은 물론이고 부대배치까지 간섭하는 아버지의 관심과 기대를 견뎌내지 못했다. 아들은 결국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 이탈리아 여행 중 요절했다. ‘붓 재주 하나로 대성할 생각을 말라’는 좌우명으로 자유와 재능을 조화시키려 노력했던 남종화의 거장 소치(小癡) 허련(1808∼1893)의 집안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전남 진도를 중심으로 5대 200년에 걸쳐 13명의 화가를 배출해 운림산방(雲林山房)을 이뤄낸 소치 가문은 재주꾼과 거장은 다르다고 봤다. 아무리 시(詩)·서(書)·화(畵)에 재주가 많더라도 폭넓은 지식과 품 넓은 인성이 없으면 거장은 될 수 없다는 가르침을 남겼다. 베풂의 삶을 실천한 소치의 손자 남농(南農) 허건의 유산은 특별하다.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그가 머물던 목포 집은 늘 그림을 얻으러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하도 그림 적선(積善)을 많이 하는 바람에 그림값이 떨어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하인이나 평민들이 몰래 곳간의 곡식을 퍼가도 모르는 체했다’고 전해오는 전라도 담양 고부잣집 사람들이 남긴 유산도 아마 배려와 나눔의 미학이리라.
하태원 논설위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