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명 오피니언팀장
하지만 대통령중심제인 한국에서 현 상황에 대한 모든 책임은 결국 대통령에게 있다. 국민들은 사심 없이 국가를 이끌려는 대통령의 진정성에 공감하면서도 일을 추진하는 과정엔 일말의 불안과 우려를 떨치지 못하고 있다. 한 대학교수의 말이다.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인허가권과 법령 제정·개정권을 방송통신위원회에 두느냐,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하느냐 문제가 과연 대통령이 저토록 분노하고 흥분할 만한 사안이냐에 대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대통령이 현 상황을 비상시국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윤창중 대변인의 말도 얼른 다가오지 않는 게 사실이었다. 대통령이 국민과 직접 대화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조금 심하게 말하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고까지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대통령의 정치인생은 야구로 치면 구원투수의 성격이 짙다. 당이 위기에 몰릴 때마다 모두 그의 얼굴만 쳐다보았고 그때마다 독립운동하는 심정으로 불려나왔다. 당내에서는 모두 ‘선녀를 바라보는 나무꾼’ 심정으로 직언도 못하고 그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만 바라보는 상황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설득과 타협보다는 밀어붙이기, 과정보다는 결과 중심적인 스타일을 가질 수 있다. 이제 전 국민을 상대로 하는 대통령이 되었으니 구원투수가 아니라 경기전반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선발투수의 리더십을 보여줘야 하는데… 우려스럽다.”
박 대통령의 청와대 경험이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철권통치 시기, 즉 유신시절에 집중된 것을 주목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었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찍었다는 40대 교수의 말이다.
“지금 국민들은 박 대통령 모습에서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이명박 전 대통령이 보여주었던 제왕적 대통령의 모습이 재연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이나 이 전 대통령 세대는 민주주의 경험이 너무 취약한 세대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민주화운동의 대척점에 있었던 세대다. 박 대통령도 민주주의를 체험한 분이라고는 할 수 없지 않은가. 그래서 걱정스럽다.” 새누리당의 한 국회의원은 “박 대통령은 ‘국회의원들의 목표는 오로지 배지뿐’이라고 불신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인을 불신하니 정치를 불신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정치를 멀리해 국정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며 박 대통령의 정치 불신을 걱정했다.
정치는 흔히 대화의 예술이고 과정의 예술이라고 한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정치 없이는 실현될 수 없다.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한류의 바탕에는 민주주의를 쟁취한 한국인들의 자유로운 상상력이 흐르고 있다. 가둬놓고 연습시킨다고 말춤이 나오는 게 아니다. 민주화, 자유화, 개성존중을 경험해야 한다.”
허문명 오피니언팀장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