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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허문명]대통령님, ‘미래창조’ 정치를 해 주세요

입력 | 2013-03-08 03:00:00


허문명 오피니언팀장

생생한 여론을 전하는 본보 오피니언면 ‘톡톡’ 시리즈 주제를 ‘식물 정부’로 잡고 취재차 만난 국민들은 너나없이 답답해했다. 지금 민심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야당은 발목잡기, 여당은 (대통령) 눈치보기, 대통령은 힘으로 밀어붙이기가 만든 3자의 합작품’이라는 거다. 우선 야당에 대한 불만이 컸다. 국정에 협력하겠다고 할 때는 언제고 ‘사소한’ 것을 앞세워 발목을 잡더니 이젠 꼼수까지 부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야당의 행태는 나라와 국민을 위한다기보다는 오로지 대통령 리더십에 흠집을 내고자 하는 고의성이 짙어 보인다는 얘기가 많았다.

하지만 대통령중심제인 한국에서 현 상황에 대한 모든 책임은 결국 대통령에게 있다. 국민들은 사심 없이 국가를 이끌려는 대통령의 진정성에 공감하면서도 일을 추진하는 과정엔 일말의 불안과 우려를 떨치지 못하고 있다. 한 대학교수의 말이다.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인허가권과 법령 제정·개정권을 방송통신위원회에 두느냐,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하느냐 문제가 과연 대통령이 저토록 분노하고 흥분할 만한 사안이냐에 대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대통령이 현 상황을 비상시국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윤창중 대변인의 말도 얼른 다가오지 않는 게 사실이었다. 대통령이 국민과 직접 대화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조금 심하게 말하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고까지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이런 대통령 스타일의 밑바탕에는 “결과만 좋으면 되니 무조건 믿고 따르라”는 목표 중심적 세계관이 깔려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과 지근거리에서 일했던 새누리당의 한 국회의원 말이다.

“대통령의 정치인생은 야구로 치면 구원투수의 성격이 짙다. 당이 위기에 몰릴 때마다 모두 그의 얼굴만 쳐다보았고 그때마다 독립운동하는 심정으로 불려나왔다. 당내에서는 모두 ‘선녀를 바라보는 나무꾼’ 심정으로 직언도 못하고 그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만 바라보는 상황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설득과 타협보다는 밀어붙이기, 과정보다는 결과 중심적인 스타일을 가질 수 있다. 이제 전 국민을 상대로 하는 대통령이 되었으니 구원투수가 아니라 경기전반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선발투수의 리더십을 보여줘야 하는데… 우려스럽다.”

박 대통령의 청와대 경험이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철권통치 시기, 즉 유신시절에 집중된 것을 주목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었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찍었다는 40대 교수의 말이다.

“지금 국민들은 박 대통령 모습에서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이명박 전 대통령이 보여주었던 제왕적 대통령의 모습이 재연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이나 이 전 대통령 세대는 민주주의 경험이 너무 취약한 세대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민주화운동의 대척점에 있었던 세대다. 박 대통령도 민주주의를 체험한 분이라고는 할 수 없지 않은가. 그래서 걱정스럽다.” 새누리당의 한 국회의원은 “박 대통령은 ‘국회의원들의 목표는 오로지 배지뿐’이라고 불신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인을 불신하니 정치를 불신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정치를 멀리해 국정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며 박 대통령의 정치 불신을 걱정했다.

정치는 흔히 대화의 예술이고 과정의 예술이라고 한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정치 없이는 실현될 수 없다.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한류의 바탕에는 민주주의를 쟁취한 한국인들의 자유로운 상상력이 흐르고 있다. 가둬놓고 연습시킨다고 말춤이 나오는 게 아니다. 민주화, 자유화, 개성존중을 경험해야 한다.”

정부조직개편의 핵심인 미래창조과학부가 추구하는 미래와 창조란 것도 결국 다양성의 존중과 대화 속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일방주의 정치로는 미래도 창조도 없다.

허문명 오피니언팀장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