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개봉 ‘장고 : 분노의 추적자’서 잔인한 농장주역
“내가 세상의 왕이다.”
케이트 윈즐릿의 풍만한 허리를 부여잡고 뱃머리에서 이렇게 외쳤던 리어나도 디캐프리오(39). ‘타이타닉’(1997년)의 명대사처럼 당시 그는 최고의 배우였다. 조니 뎁과 함께 꽃미남 듀오로 각광 받은 ‘길버트 그레이프’(1993년), 멜로의 신(新)고전이 된 ‘로미오와 줄리엣’(1996년)에 출연하며 뭇 여성을 설레게 했다. 브래드 피트가 야성미로 어필했다면, 디캐프리오는 미소년 외모로 여심을 무장해제했다.
‘세상의 왕’으로 살던 그가 7일 오후 서울 강남구 리츠칼튼호텔 기자회견장에 나타났다. 그가 출연한 ‘장고: 분노의 추적자’(21일 국내 개봉) 홍보를 위해 처음 방한한 것이다.
캔디는 흑인 노예들의 목숨을 건 격투기를 낄낄대며 즐기는 극악한 인물. 시대의 꽃미남은 왜 이런 악역에 끌렸을까? “존경하는 배우인 폭스와 새뮤얼 잭슨(캔디의 측근 흑인노예 역)의 지지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들은 ‘내가 끝까지 가지 않으면 당시 흑인이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알 수 없다’며 밀어붙이라고 응원해 줬어요. 당시 흑인의 참상은 영화보다 더 참혹했습니다.” 폭스와 잭슨은 모두 흑인 배우다.
타란티노 감독에게 찬사를 보냈다. “동화와 스파게티 웨스턴을 혼합한 듯한 영화죠. 이런 영화는 타란티노 감독이 아니면 만들기 힘들어요. 당시 백인들의 잘못된 모습을 대변하는 역할을 해 영광입니다.”
그는 환경운동에 전념하기 위해 은퇴한다는 최근 소문을 일축했다. “최근 인터뷰에서 2년간 영화 3편에 출연하며 지쳐서 당분간 쉬겠다고 했는데 와전됐네요. 환경운동을 더 적극적으로 할 계획은 맞고요. 지구가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데,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아요.”
5월 국내 개봉하는 ‘위대한 개츠비’를 설명하면서 그는 또 한번 사회에 관한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그는 한국 영화에 대한 평가도 잊지 않았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는 혁명적인 영화예요.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도 ‘박 감독은 굉장한 천재’라고 말했어요.”
디캐프리오는 이날 오후 6시 반경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열린 레드카펫 행사에선 성실하고 겸손한 자세로 한국 팬의 마음을 다시 사로잡았다. 그는 건물 밖에 대기하거나 통로를 따라 늘어선 수백 명의 팬에게 웃음을 잃지 않고 일일이 사인을 해주고 사진촬영 요청엔 사진기를 받아 함께 얼굴을 맞대고 직접 버튼을 눌러 사진을 찍어주며 팬들을 감동시켰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