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 돌고돌아 다시 관료내각?

총선 후 2주일이 지났지만 정치권 난맥상 때문에 새 정부 구성을 못하고 있는 이탈리아에 또 한 번 ‘전문 관료 내각’이 들어설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지금 이탈리아 정국은 총선 결과 하원에서 과반수 의석을 얻었지만 상원에서는 과반을 얻지 못한 제1당 민주당이 연정 상대를 찾지 못해 정부 출범이 계속 지연되고 있다. 제2당인 중도 우파 자유국민당과는 전혀 다른 노선 때문에, 제3당인 5성운동은 기성 정치권과의 연정을 무조건 거부하고 나서 민주당 주도의 연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러자 국민들은 이런 정치권에 등을 돌리며 냉담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고 결국 정치인이 배제된 관료 내각을 구성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정가와 언론에서 대두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탈리아는 부채위기가 불거진 뒤 2011년 11월 자유국민당 소속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물러나면서 출범했던 현 관료 내각에 이어 또다시 관료 내각이 구성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2011년 가을 경제 문제가 심각해지자 이탈리아에서는 위기를 헤쳐 나갈 실력과 국제사회의 신망을 고루 갖춘 총리와 내각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모아졌다. 조르조 나폴리타노 대통령은 유럽연합(EU) 집행위원 출신인 마리오 몬티를 총리로 지명하고 관료 내각을 출범시켰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는데 선거를 치르면서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던 데다 국민이 정치권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관료 내각은 정치인을 배제한 채 의회나 정당에 소속되지 않은 총리와 전문 관료 출신들이 정부를 맡아 이끄는 것으로 이탈리아의 독특한 제도다.

또다시 관료 내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은 정치 난맥상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총선에서 원내 3당(상원 54석, 하원 109석)으로 부상하며 새 정부 출범의 키를 쥐게 된 5성운동의 베페 그릴로 대표는 5일 블로그에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 내각이 필요하다”며 “코라도 파세라 경제개발장관이 새 내각을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릴로 대표는 4일 총선 뒤 가진 첫 기자회견에서 “기존 정당으로 구성된 내각은 무조건 반대하겠지만 비정치적 인물들로 구성된 행정부에는 적대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정가에서는 민주당과 자유국민당이 대연정 가능성을 배제함에 따라 5성운동이 지금처럼 연정을 거부하는 한 결국 해법은 관료 내각이나 재선거밖에 없다는 게 중론이다. 일단 관료 내각으로 가다가 하반기 적절한 시점에 재선거를 치르는 방안도 함께 거론된다.

관료 내각의 총리 후보 1순위로는 줄리아노 아마토 전 총리와 이그나치오 비스코 이탈리아 중앙은행 총재가 거론되고 있다. 또 파브리치오 사코만니 중앙은행 부총재, 파브리치오 바르카 사회연대장관, 마테오 렌치 피렌체 시장도 함께 거명된다. 새 정부가 구성될 때까지는 현 몬티 내각이 유지된다.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