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추를 채우면서’
천양희(1942∼)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세상이 잘 채워지지 않는다는 걸
단추를 채우는 일이
단추만의 일이 아니라는 걸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잘못 채운 첫 단추, 첫 연애 첫 결혼 첫 실패
누구에겐가 잘못하고
절하는 밤
잘못 채운 단추가
잘못을 깨운다
그래, 그래 산다는 건
옷에 매달린 단추의 구멍찾기 같은 것이야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단추도 잘못 채워지기 쉽다는 걸
옷 한 벌 입기도 힘들다는 걸
현재 심사정의 ’버드나무와 매미, 호박과 메뚜기’.
동양인 최초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두 번째 수상한 대만 출신 리안 감독의 얘기다. 수상 직후 인터뷰에서 그는 “모든 불이익에는 그에 상응하는 이점도 있더라”라고 했다. 대입 실패와 백수 시절을 거치는 동안 얻은 게 잃은 것보다 많았다는 체험적 증언처럼 들렸다.
새 학기를 맞아 대학 캠퍼스마다 풋풋한 새내기들이 북적일 때 세상에서의 첫 실패라는 쓴맛을 본 또래 청춘들은 불안과 좌절감 속에 재도전을 시작했다. 반듯한 직장을 잡은 사회 초년병들이 활기차게 출근할 때 상반기 취업시즌을 목표삼아 ‘백수 탈출’을 외치는 청년들의 발걸음도 분주하다. 천양희 시인의 ‘단추를 채우면서’는 첫발부터 잘못 뗀 것은 아닌지, 주눅 든 청춘남녀에게 깨달음과 위로를 전한다. 어긋난 첫 단추가 마지막 단추까지 인생을 좌지우지 흔들지 않도록 조급증을 부리지 말고 스스로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보라고 넌지시 권한다. 어둠 속에서 밝음이 오고, 겨울 속에서 서서히 봄이 꿈틀거리듯 제 약점과 불완전함을 직시할 때 자신의 진정한 힘도 찾을 수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습관대로 살다 보면 단추 채우기 같은 사소한 일상도 어긋나기 십상이다. 입시와 취업의 치열한 관문을 지나가며 한 방 크게 얻어맞았다고 실패한 청춘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인생을 속도전이 아니라 다소 시간이 걸려도 완성을 향한 여정으로 보는 자세다.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이고 인생 최고의 날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이란 말을 떠올리며 불끈 용기를 내보는 거다. 잘못 채운 단추를 바로잡는 유일한 길은 단추를 풀고 첫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