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3주기, 유족-생존장병들은 지금…
경기 평택 2함대사령부에 전시된 두 동강 난 천안함. 2010년 3월 26일 폭침 당시의 참혹한 흔적이다. 평택=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전환수 씨(24)는 문을 닫는 소리만 들려도 소스라치게 놀란다. 큰 소리를 들으면 불쑥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화가 나기도 한다. 전형적인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다.
이은수 씨(23)는 어둠에 예민해졌다. 갑자기 불이 꺼지면 심장이 빠르게 뛰고 식은땀이 난다. 그는 어느 날 함선의 식당에서 동료들이 새까맣게 변한 채 시신이 돼 있는 꿈을 꿨다. ‘3년이면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이들이 3년 전 겪었던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고 있다.
입대 동기인 전 씨와 이 씨는 천안함 사건의 생존 장병이다. 둘은 그날 해군 입대 후 처음으로 출동했다. 승선한 대원 104명 중 막내였던 전 씨(당시 이병)는 욕실에서 빨래를, 이 씨는 샤워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쾅!’ 하는 굉음과 함께 전 씨의 몸이 욕실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전기가 끊겨 앞이 보이지 않았다. 어렴풋한 비상구 불빛을 따라 배 위로 기어올라가 보니 방금 전까지 경계근무를 섰던 배의 반쪽이 보이지 않았다. 전 씨가 서 있는 나머지 반쪽도 옆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함께 나온 이 씨는 옷조차 제대로 입지 못한 상태였다. 곳곳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둘은 다행히 구조된 58명에 들었지만 나머지 46명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전 씨는 오른 검지 첫마디가 굽혀지지 않는다. 천안함 사건 당시 몸이 튕겨나갈 때 문틀을 잡다가 인대가 끊어진 것이다. “밥 먹을 때나 글을 쓸 때 불편하죠. 이제는 엄지와 중지만으로 볼펜을 잡고 글씨를 쓸 수 있어요.”
전 씨는 손가락 부상으로 7급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 씨는 별다른 외상이 없다는 이유로 유공자에 포함되지 않았다. 천안함 생존 장병 대부분이 이 씨와 비슷한 처지다. 이 씨는 “유공자라는 이름대로라면 공(功)을 따져야 하는데 몸의 부상만 본다. 천안함 사건 이후 국가로부터 받은 건 명절 때 청와대에서 보낸 선물세트가 전부였다”고 말했다.
생존 장병들은 사건이 일어난 3월 26일과 현충일, 국군의 날이 되면 국립대전현충원이나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한다. 경조사가 있을 때도 서로 돕는다. 지난해 생존 장병 중 한 사람인 전준영 씨(26·당시 병장)가 결혼했을 때도 다같이 모여 축하해줬다.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