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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뉴 프레지던십] 역지사지 리더십

입력 | 2013-03-11 03:00:00

“힘센 쪽이 양보해야” 박근혜 야당대표 시절 발언에 답 있다




2006년 1월 26일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야당 대표로 신년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동아일보DB

《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에서 야당의 힘은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2005년 6월 28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린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이 전방 감시소초 총기 난사 사건의 책임을 물어 윤광웅 국방부 장관에 대한 해임을 요구한 데 대한 반응이었다. ‘강한 야당’을 견제하기 위해 국민이 ‘힘없는 대통령’을 도와 달라는 취지였다. 》

다음 날 의원총회에 참석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유례없이 강한 어조로 노 대통령을 비판했다. 박 대표는 “국방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 제출은 최근 잇단 군기 문란에 대해 총체적으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며 “대통령의 글을 보면 아무런 책임을 못 느끼는 것 같다. 국방부 장관뿐 아니라 군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도 절절히 반성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박 대표는 이날 예정된 노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의 오찬도 거부했다. 그러면서 노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오찬 제안에 불쾌감을 나타냈다. 박 대표는 “지난번에도 행사 전날 갑자기 만찬에 참석해 달라고 했는데 매번 그렇게 하는 것은 문제”라며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이야말로 권위주의의 극치”라고 쏘아붙인 것이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실패의 교훈’

박근혜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 탄핵 직후인 2004년 3월 23일부터 2006년 6월 16일까지 2년 3개월간 야당 대표를 맡았다. 이 기간 박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과 날카롭게 대립하며 사실상 국정 주도권을 쥐었다. 2005년 노무현 정부가 사립학교법 개정을 추진할 때는 장외투쟁에 나서는 등 노 정부가 여당의 수적 우세로 ‘밀어붙이기 정치’를 하려 들 때마다 ‘강 대 강’ 충돌도 마다하지 않았다. 노 정부의 실정(失政)에 야당의 선명성이 부각되면서 국민은 지방선거, 재·보궐선거 때마다 한나라당의 손을 들어 줬다.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정치 지도자 박근혜’로 입지를 굳힌 것도 이 시기다.

노 전 대통령은 “야당의 힘은 참으로 무섭다”고 했지만 당시 상황을 보면 이는 ‘엄살’에 가까웠다. 2005년 6월 열린우리당은 146석으로 과반(150석)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명실상부한 제1당이었다. 이어 한나라당 125석, 민주당 10석, 민주노동당 10석, 자민련 3석, 무소속 5석으로 야권의 전체 의석(153석)은 여당보다 7석 많았다. 하지만 모두 ‘같은 편’은 아니었다. 실제 윤 장관 해임건의안은 열린우리당과 민노당이 손을 잡으면서 결국 국회에서 부결됐다.

그런데도 노 전 대통령은 야당의 국정 발목 잡기를 연일 비판하면서 야당에 대연정을 제안하고 선거제도 개편을 추진하려다가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 박 대통령은 그해 9월 7일 노 전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150분간 불꽃 튀는 대화를 나눴다. 노 전 대통령이 대연정과 관련해 “(민생이 어렵다고 하니 한나라당이) 직접 맡아 보라는 거다. 제발 맡아서 서로의 이해를 높이자”고 하자 박 대통령은 “그보다는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대로 한번 해볼 수 있지 않느냐”고 응수했다. 박 대통령은 또 노 전 대통령에게 “여소야대여서 힘들다고 하는데, (2004년) 총선 직후에는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넘긴) 여대야소 아니었느냐. 국민이 맘에 안 들면 (여소야대로) 뒤집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야당 대표 박근혜를 잊지 말아야”

야당 대표 시절 박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 소속이던 김혁규 전 경남도지사를 총리로 임명하려 하자 “한나라당은 상관하지 않고 (김 전 지사의 임명을) 밀어붙이면 야당을 무시하겠다는 오기”라며 “힘없는 쪽이 양보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상생과 화합의 정치를 위해 노 대통령이 큰 정치를 해 주길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한나라당이 반대한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를 노 전 대통령이 임명하려 하자 박 대통령은 “대통령이 국무위원 청문회의 입법 취지를 존중하지 않고 무시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국회 청문위원들이 청문 대상자의 적격 여부를 표결에 부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내기도 했다.

박 대통령이 야당 대표이던 시절과 민주통합당이 정부 출범 자체를 가로막은 현재 상황은 여러모로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국회선진화법으로 야당의 협조가 더욱 절실해진 상황에서 야당을 국정 파트너로 인정하는 새로운 프레지던트십(프레지던트+리더십의 합성어)의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박 대통령이 어느 때보다 ‘역지사지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얘기다.

박 대통령은 대선 기간 국회를 존중하고 상대를 인정하는 차원에서 △정기국회 연설 정례화 △국가지도자 연석회의 개최 △대탕평 인사 등을 여러 차례 약속했다. 많은 전문가는 박 대통령의 대선 기간 약속과 야당 대표 시절 발언 속에 국정 운영의 모든 해답이 들어 있다고 조언한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현재 야당은 주인이 없는 상황인데, 야당을 강하게 몰아붙이면 오히려 야당 내 강경파가 다시 힘을 얻을 수밖에 없다”며 “한국 정치의 대승적 관점에서 야당 내 합리적 인사들이 제대로 된 정치를 펼 수 있도록 대통령이 도와 줘야 한다. 그것은 야당과의 파트너십을 만드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말했다.

이재명·장원재 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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