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사도 대학서 배우는데 ‘타각적 검사’ 의사만 허용
“첨단 검사기기가 널려 있는데 아직도 일선 안경원은 수십 년 전부터 쓰던 시력표나 적녹(赤綠)검사에 의존해야 하는 실정입니다. 실력 없다고 오해받기 딱 좋죠.”
서울 동작구 상도1동에서 안경원을 운영하는 박준철 원장(42)은 “소비자의 눈 건강을 위해 돈 들여 검사기기를 장만하겠다는데도 이를 가로막는 현실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콘택트렌즈를 구입했던 이지민 씨(20·여)는 눈을 깜빡일 때마다 렌즈가 겉도는 느낌이 들어 이 안경원을 다시 찾았다. 그는 무게중심이 아래에 있어 덜 움직이도록 설계된 콘택트렌즈로 바꿨다. 이 씨는 “두 번 걸음 한 것도 불쾌하지만 눈에 이상이라도 생기면 어떡할 뻔했느냐”고 불평했다.
안경사들이 꼽는 ‘손톱 밑 가시’는 타각적(他覺的) 굴절검사기기를 못 쓰게 하는 현행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 및 시행령이다. 빛을 사용해 각막과 수정체의 상태를 조사하는 세극등, 잠복 원시 여부를 판단하고 안경을 맞춘 뒤 시력이 제대로 조정됐는지 측정하는 검영기, 각막 크기를 측정해 눈 크기에 맞는 렌즈를 추천할 수 있게 돕는 각막 곡률 측정기 등이 타각적 굴절검사기기에 속한다.
▼ 안경원서 첨단검사땐 질병 발견에 도움 ▼
이들 기기를 쓰면 시력검사표를 켜고 “어떤 숫자가 보이세요?”라고 묻거나 도수가 다른 렌즈를 바꿔가며 “어떤 것이 더 잘 보이세요?”라고 질문할 필요 없이 정확한 측정이 가능하다. 대당 가격이 100만∼400만 원대에 이르지만 안경사들은 “비용이 들어가더라도 고객의 신뢰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안경사들은 상대적으로 정확도가 떨어지는 자동 굴절검사기기만 쓸 수 있다.
안경사들이 타각적 굴절검사기기를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은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개정된 1990년부터다. 당시에는 안경광학과가 있는 대학조차 드물어 타각적 굴절검사기기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안경사가 없다는 게 개정 이유였다.
이정배 대한안경사협회장은 “지금은 4년제 대학 10여 곳을 포함해 47개 대학 안경광학과에서 타각적 굴절검사기기 사용법을 가르치고 있다”며 “안경광학과를 졸업하고 국가시험을 치러 자격증을 딴 안경사들이 시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법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강유현 기자 yh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