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 이모 씨(54·여·무직)는 사업가 임모 씨(46)에게 접근해 “박정희 대통령 시절 비자금으로 보관된 달러가 부산 부둣가 창고에 있는데, 관리자를 잘 안다”면서 “5000만 원을 주면 달러 5억 원어치를 받을 수 있다”고 꾀었다. 이 씨는 인터넷에 떠도는 미국 달러 뭉치와 채권 사진을 보여줬다. 운영하던 사업체가 부도나 돈이 급했던 임 씨는 바로 돈을 건넸지만 이 씨는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
지난해 9월 서울 관악구의 한 빵집. 이번에는 이 씨의 시선이 성모 씨(54·무직)의 휴대전화 화면에 꽂혔다. 비닐로 포장된 5만 원권 뭉치, 층층이 쌓인 금괴, 달러 묶음…. 성 씨는 사진을 보여주며 “내가 김대중 전 대통령 비자금을 만든 인물이다. 현금 2억∼3억 원을 갖고 오면 미국채권, 달러, 12.5kg 금괴, 현금 5억 원이 들어 있는 박스 2개를 주겠다”고 했다. “창고가 추풍령에 있으니 (돈을) 당장 가져올 수도 있다”는 말이 결정적이었다. 이 말을 믿은 이 씨는 성 씨에게 1억 원을 건넸지만 곧 연락이 끊어졌다.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부장 이형택)는 사기 혐의로 성 씨를 구속 기소했다고 11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성 씨는 이 씨처럼 인터넷에서 떠도는 현금과 금괴 사진을 내려받아 자신이 직접 찍은 것처럼 보여준 것으로 드러났다. 이 씨는 지난해 10월 경찰에 자신의 범죄를 자백한 뒤 성 씨를 신고했다. 검찰은 유방암 말기인 이 씨를 올해 1월 불구속 기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