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판 SF연극 ‘두뇌 수술’ ★★★☆
1945년에 발표된 옛 희곡을 그대로 차용하면서 참신한 스타일로 재창조한 극단 그린피그의 연극 ‘두뇌수술’. 극단 그린피그 제공
일제강점기에 활약한 극작가 진우촌(1904∼?)이 1945년에 발표한 희곡을 극화한 연극은 이 현기증 나는 괴리감을 극대화한다. 우선 공간부터 그렇다. 소극장으로 내려가는 건물 입구에 병원 직원과 간호사로 분한 배우들이 등장해 “본 오영호 외과의원의 원장이신 오 박사께서 세계의학계를 놀라게 할 새로운 수술로 외래환자를 보실 겨를이 없다”고 선포한다. 그러자 관객 사이에 섞여 있던 환자들과 실랑이가 벌어진다. 졸지에 환자 무리가 된 관객은 병원이 된 극장 안으로 밀려들어간다. 소독약 냄새 가득한 공연장은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없다. ㄷ자 형태의 복도를 따라 병원 대기석 같은 의자들이 놓여있을 뿐.
거기서 관객은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복고적 스타일의 연기를 만난다. 짙은 마스카라를 붙이고 과장된 분장을 한 배우들은 옛날 톤의 과장된 대사와 연기로 관객의 웃음을 유발한다.
좌파 성향의 진우촌은 무산계급을 대변하는 무길의 손을 들어준다. 연출가 윤한솔은 슈퍼영웅들을 등장시키며 과학기술 찬가를 부르기 바빴던 근대성 일반에 대해 야유를 퍼붓는다. 하지만 그 칼날을 광복 전후 친일과 친미의 사대주의로만 국한시킨 것은 패착이다. 소비에트적 세뇌(洗腦)야말로 ‘두뇌수술’의 우회적 표현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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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대한민국연극대상 작품상 수상작. 17일까지 서울 대학로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2만 원. 010-8120-1226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