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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제주의 봄 ‘삼나무 꽃가루’ 주의보

입력 | 2013-03-13 03:00:00

피톤치드 듬뿍 삼림욕엔 최고
봄이면 엄청난 꽃가루 날려… 알레르기 환자 고통의 계절




제주시 봉개동 절물휴양림 삼나무 숲. 삼나무는 유용물질인 피톤치드를 뿜어내며 산림욕에 최적의 조건을 제공하지만 봄철마다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꽃가루가 날려 고통을 주고 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12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절물휴양림. 땅바닥에는 하얀 변산바람꽃이 무리지어 피었고 장수를 상징하는 세복수초에 황금술잔을 연상시키는 노란 꽃이 맺혔다. 줄기에 잔털이 수북한 새끼노루귀는 앙증맞기 그지없다. ‘봄의 전령 삼총사’로 불리는 꽃들이 활짝 피어나면서 봄기운이 완연해졌지만 바람이 불자 노란 가루가 날리기 시작했다. 하늘을 찌를 듯 뻗은 삼나무의 꽃가루다. 울창한 삼나무 숲은 방향물질인 피톤치드를 뿜어내며 삼림욕에 최적의 조건을 제공하지만 삼나무 꽃가루가 날리는 제주의 봄은 알레르기 환자에게는 고통의 계절이다.

○ 삼나무의 빛과 그늘

삼나무 숲을 걸으면 피톤치드의 효과를 제대로 만끽할 수 있다. 식물이 자기 방어수단으로 내뿜는 물질인 피톤치드는 항산화 항균 등의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삼나무 숲을 찾는 발길이 수년 전부터 부쩍 늘었다. 제주보건환경연구원 조사 결과 삼나무 숲에서 나오는 피톤치드는 1011∼1087pptv(1조분의 1을 나타내는 부피단위)로 활엽수림(290∼513pptv)에 비해 훨씬 높다.

문제는 삼나무에서 날리는 꽃가루. 2월 중순부터 4월 초까지 농촌 도시를 막론하고 대기 중에 엄청난 꽃가루가 날아다닌다. 쌀알 크기의 꽃 한 송이에 1만3000개의 화분이 생산될 정도로 양이 많다. 삼나무가 유난히 많은 일본에서는 ‘삼나무 꽃가루 경보’를 발령하는 등 오래전부터 사회 문제가 됐다. 제주지역도 비슷하다. 봄철에 발작적 재채기, 콧물, 가려움증, 호흡곤란을 호소하는 알레르기 환자가 급증한다. 제주의 알레르기 비염, 아토피 피부염 발병률이 다른 지역에 비해 높은 이유가 삼나무 꽃가루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삼나무 꽃가루에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문제가 없지만 알레르기 환자에게 제주의 봄은 치명적이다. 제주대 의학전문대학원 이재천 교수(호흡기알레르기내과)는 “알레르기 환자가 증가하는 시기가 삼나무 꽃가루가 발생하는 때와 일치한다”며 “약물치료가 가능하지만 알레르기 반응이 있으면 사전에 외출을 자제하고 손과 코, 얼굴 등을 깨끗이 씻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머지않아 사라질 운명

늘 푸른 나무인 삼나무는 제주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원래 자생 수종은 아니다. 제주어(語)로 ‘쑥대낭’으로 불리는 삼나무는 1930년대 일제강점기 목재생산 등을 위해 일본에서 들여왔다. 땔감이나 숯 생산을 위해 자생 수종을 베어낸 오름(작은 화산체) 등에 집중적으로 삼나무 조림을 했다. 삼나무는 연평균 기온이 12도 이상으로 비가 많은 곳에서 잘 자라는 난대 및 온대 수종이어서 제주지역 기후특성과 들어맞았다.

1970년대 녹화사업에서 삼나무는 권장 수종의 하나였다. 10년이 되기 전에 20m 이상 자라는 속성수로 건축 토목 선박 가구재 등에 요긴하게 쓰이기도 했다. 1970년대 제주에 귤 재배 열풍이 불면서 너도나도 삼나무를 방풍림으로 심었다. 귤 과수원 주변에 어김없이 삼나무가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제주지역 삼나무 숲 면적은 6000ha에 이른다. 귤 과수원 방풍림으로 심은 삼나무는 바람을 막아주기는 하지만 햇빛을 가려 애물단지로 전락했고 편백나무 등에 비해 경제수종으로서의 가치도 떨어졌다. 여기에 알레르기 유발 원인으로 꼽히면서 제주 삼나무는 대부분 제거될 운명에 놓였다. 제주도 고영복 녹지환경과장은 “간벌과 갱신사업 등으로 인공조림한 삼나무를 연차적으로 없애나갈 계획”이라며 “삼나무를 베어낸 자리에 황칠나무 고로쇠나무 등 경제가치가 높은 자생종을 심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