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동상 찾아갔던 마음 지켜야 ‘노동자 행복한 나라’
서울 울산 평택 등 전국 곳곳의 사업장에서 노조원들의 장기 농성이 이어지고 있다. ‘노동이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박근혜 정부가 앞으로 어떤 리더십으로 노동현안을 해결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사진은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도로에서 쌍용자동차 노조원들이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모습. 동아일보DB
○ ‘노동 실종’의 이유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지 약 3개월, 취임한 지 보름이 지났다. 짧은 기간임에도 노동계의 기대는 빠르게 ‘실망 모드’로 바뀌고 있다. 새 정부의 노동 정책과 관련해 ‘노동이 없다’는 극단적인 표현이 공감을 얻을 정도다. 벌써부터 대규모 춘투(春鬪)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노동단체를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 듯한 모습과 노동 관련 공약의 후퇴, 그리고 노동 문제 전문가의 부재를 원인으로 분석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때 한국노동연구원장을 지낸 최영기 경기개발연구원 초빙선임연구위원은 “가장 큰 노동문제가 고용인 것을 감안할 때 새 정부에 ‘노동이 없다’는 말은 어폐가 있다”고 전제하면서 “다만 전통적인 의미에서 볼 때 노동을 중시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고 말했다.
최 연구위원은 노동단체에 대한 ‘배려’ 실종을 꼽았다. 박 대통령은 취임식(2월 25일) 사흘 전에야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을 방문했다. 반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찾지 않았다. 이를 두고 의도적 배제라는 지적이 나왔다. 나아가 내각이나 대통령 비서진에 노동 문제를 조언할 전문가가 눈에 띄지 않는 점을 고려할 때 애당초 노동계에 대한 비중을 크게 두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최 연구위원은 “이른바 ‘조직 노동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이라며 “선거 때 노동계의 도움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빚진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 노동전문가는 “지난해 전태일재단 방문을 거부당한 일이 대통령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 개연성도 있다”며 “노동단체를 대화가 아닌 투쟁하는 조직으로 인식하도록 했을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공약 후퇴를 지적하는 의견도 많다.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대선 전후로 고공농성과 노동자 자살이 이어지는 극단적인 상황이 연출됐는데 지금까지 가시적인 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초 2015년까지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공약은 국정과제에서 그 시기가 빠졌다. 사회보험 확대도 비정규직 대책이라기보다는 저임금근로자를 위한 방안이다. 특수고용직 대책도 ‘립서비스’ 수준에 머물렀다. 정년 연장과 관련해서도 ‘단계적 시행’이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했다. 정 본부장은 “일자리 창출에 무게가 실리면서 노사관계는 선언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라며 “오죽하면 반(反)노동도 아니고 ‘노동이 없다’는 말이 나오겠느냐”고 지적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회장을 지낸 법무법인 시민 김선수 대표변호사는 “무엇보다 노동계를 파트너로 인정해야 한다”며 “서로를 인정하고 그 위에서 고용문제 해결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이마트 부당노동행위 특별감독 등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시그널’로 해석했다. 그는 “정부가 부당노동행위나 불법 파견에 대해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갖고 일관되게 나아가면 노동계도 좋은 평가를 할 것”이라며 “상생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도록 정부가 보여 줘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계의 우려를 의식한 듯 방하남 신임 고용부 장관은 최근 진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12일 한국노총을 방문한 그는 “민주노총도 빠른 시일 내 방문할 것이며 가슴 아픈 현안에 대해서는 빠른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시민사회와 소통 확대해야
고계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총장은 “과거 개발시대 때처럼 ‘결정하면 따라와야 한다’는 인식만 있는 것은 아닌가 우려된다”며 “시민사회와 적절하게 소통하지 않으면 정부는 갇히게 되고 국민은 실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성호·김준일·김수연 기자 star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