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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에 만나는 詩]고통의 장소에서 고통을 지우려 하지만 그 고통 지울 수 없네

입력 | 2013-03-13 03:00:00


피아(彼我)가 불분명하네. 눅진한 공기에 실린 모래바람. 앞을 가늠하기 힘드네. 여기는 사막 식당. 삶의 고통과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는 신기루 같은 곳. 내 아픔을 덜어줄 사람은 없네. 주검 같은 사람들이 부유하네. 지독한 허무와 고독만 가득한 곳. 여기는 사막 식당.

‘이달에 만나는 시’ 3월 추천작으로 김성대 시인(41)의 ‘사막의 식당’을 선정했다. 지난달 나온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사막 식당’(창비·사진)에 수록됐다. 이건청 장석주 김요일 이원 손택수 시인이 추천에 참여했다.

김성대 시인의 시는 쉽지 않다. “모호하게 윤곽을 잃고 사라져가는 사물과 감각이 격리되는 순간에 집중했다.”(장은석 문학평론가)

그의 시들은 뚜렷한 형체가 없는 추상화 같다. 시인에게 ‘해독’이 어렵다는 고충을 토로하니 그는 웃었다. “다들 어렵다고 해요.”

2005년 창비신인시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작가는 2010년 시집 ‘귀 없는 토끼에 관한 소수 의견’으로 김수영문학상을 받았다. 그로테스크한 그의 시에 어떻게 다가설 수 있을까. ‘사막의 식당’을 풀어달라고 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막 식당은 고통의 장소예요. 사람들은 이 장소에서 고통들을 지우려고 하는데 지울 수 없죠. 유리종을 깨뜨린 것은 결국 자기 내면의 고통스러운 종소리죠….”

김성대 시인

어렴풋 알 듯도 한 설명들이다. 작가는 “제가 쓴 시지만 한참 뒤 보면 제게도 전혀 다른 뜻으로 보인다”며 웃었다. 어차피 정답은 없다. 해석은 독자의 자유다.

김요일 시인의 추천평은 이렇다. “김성대 시인은 낯설고 비대칭적인 화법으로 남루한 삶을 프리즘처럼 투영한다. 신음하고, 반성하고, 조롱하며 색색의 빛깔로 의미를 증폭시켜 시를 생(生)으로, 생을 시로 치환한다.” 이원 시인은 “김성대 시의 매혹은 ‘끝없는 벗어남’에 있다. 사막을 벗어난 사막 식당에서 우리가 맞닥뜨리게 되는 것은 ‘이곳을 두 번 잊은 사람은 없다’는, 현실이 은폐하지 못한 목소리다”라며 추천했다.

“전통 서정시의 문법을 통해서도 미지의 영역을 향한 모험이 가능하다는 것을 시인은 보여준다. 말하자면 그는 낡고 오래 묵은 악기로 첨단의 음을 연주하는 악사다. 그 고투가 욱신욱신 빛난다.” 손택수 시인의 추천사다.

이건청 시인은 복효근 시인의 시집 ‘따뜻한 외면’(실천문학사)을 추천했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시가 진한 감동으로 읽히는 놀라움을 지니고 있다. 사소한 일상, 평범해 보이는 사물 속으로 깊이 침잠해서 도달한 발견의 말들이 빛을 발하고 있다.”

장석주 시인은 우대식 시인의 시집 ‘설산 국경’(문예중앙)을 추천하며 “모래바람, 흐느낌, 국경 따위는 정주(定住)에의 욕망과 떠돎의 운명 사이에 있는 자들이 불가피하게 감당해야 할 현실의 은유들이다. 우대식의 서정적 자아들은 이 은유들 속에서 더 또렷해지고 풍성해진다”고 평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