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의 강아지/스테파노 추피 지음/김희정 옮김/336쪽·2만5000원/예경
예경 제공
인간과 개가 함께한 역사는 1만4000년을 헤아린다. 동물의 세계에서 이처럼 서로 다른 두 종이 끈끈한 우정을 나누는 사례는 흔치 않다. 오늘날 우리가 애완견과 함께 사진을 찍듯이 인간이 고대부터 미술 작품 속에 수많은 개를 그려 넣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중세까지는 ‘애완견’이라는 개념조차 없다가 15세기 초부터 일부 가정에서 애완견을 기르기 시작했고 16세기 들어와 크게 유행했다. 당시 애완견을 기른다는 것은 엘리트 계층의 특권을 의미했다. 얀 반 에이크의 명작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1434년)에도 결혼 서약을 하는 상인 조반니 아르놀피니와 조반나 체나미 부부 사이에 앙증맞은 강아지가 서 있다. 벨기에가 원산인 브뤼셀그리폰 품종의 이 강아지는 그림에서 부부의 충실한 사랑과 신의의 상징물로 쓰였다.
르네상스기에 들어오면서 초상화에 개를 함께 그려 넣은 작품이 많아졌다. 신사들은 말을 탈 때 동반하기 좋은 마스티프나 그레이하운드 같은 덩치 큰 개를, 부인들은 작고 온순해서 무릎에 올려놓기 좋은 귀여운 강아지를 선호했다. 이탈리아 화가 티치아노는 개를 무척 사랑해서 그에게 초상화를 의뢰한 사람들은 개를 동반해야 했다고 한다.
유럽 부유층의 애완견 사랑이 깊어지면서 바로크시대 유럽에서는 애완견을 옷이나 리본, 모자는 물론 보석으로까지 치장했다. 18세기 말에는 더욱 사치스러워져 개 무덤을 만들어주는 게 유행이 됐고, 저택을 장식하기 위해 개 초상화와 수렵 장면을 그린 집도 많았다.
소묘를 많이 남긴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해부학 연구를 위해 가끔 개를 그렸다. 하지만 개를 좋아하진 않았다. 기회주의적 동물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개는 가난한 사람들을 싫어한다. 가난뱅이는 형편없는 음식을 먹기 때문이다. 반면 좋은 음식과 고기를 많이 먹는 부자들을 좋아한다.” 많은 그림 속의 개들이 고상하고 충성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그 그림들이 대개 부유층 귀족들의 의뢰로 그려졌기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