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게더/리처드 세넷 지음/김병화 옮김/485쪽·1만8000원/현암사
오케스트라에는 첼로를 연주하는 손과 트럼펫을 연주하는 손이 수시로 교차하고 소통한다. 불협화음과 감동적인 소리의 어울림, 투쟁도 있다. 음악도 출신인 세넷은 인간이나 조직, 계급 등 큰 주제가 아니라 구체적인 ‘손과 손의 만남’으로부터 사회학적 이야기를 시작한다. 현암사 제공
우리네 학교에서는 갈수록 남을 꺾고 이기는 ‘경쟁’의 기술만 강조한다. 그렇다면 ‘협력’은 언제 배울 것인가. 21세기 들어 강조되는 화두는 소통, 융합, 상생, 동반성장과 같은 단어들인데 말이다. 맬컴 글래드웰이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1만 시간의 법칙’을 주창했듯이, 저자는 협력도 수많은 연습을 통해 익히고 훈련해야 하는 기술이라고 강조한다.
리처드 세넷
저자는 손자가 다니는 영국의 초등학교에서 한 학생이 교내 방송으로 릴리 앨런의 ‘엿 먹어(fuck you!)’라는 노래를 틀었던 사건에서 이 책을 시작한다. 이 노래의 가사는 ‘네가 싫다. 너네 패거리가 전부 싫다’는 내용이었다. 저자는 이 가사가 요즘 미국이나 유럽 사회에 팽배해 있는 집단적인 폐쇄적 유대감에 기반을 둔 ‘부족주의’를 상징한다고 해석한다.
그는 “20세기 전반에는 민족주의라는 형태의 부족주의가 유럽을 파괴했는데, 21세기에도 페미니스트, 자유주의자, 세속적 인문주의자, 결혼한 동성애자, 무슬림 등의 부족주의가 서로 다른 집단을 공격한다”고 지적한다. 철학자 버나드 윌리엄스가 말한 ‘소신에 대한 물신적 숭배(fetish of assertion)’가 사회적 협력을 가로막는 장애물인 셈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중세의 길드 작업장에서부터 파리의 코뮌, 월가의 해고 노동자, 로스앤젤레스 코리아타운에서의 한인과 흑인 간의 갈등과 협력, 페이스북의 ‘친구 맺기’까지 협력의 의례가 진화해온 과정을 추적한다. ‘협력이란 좋은 것’이라는 단순한 이야기를 솜씨 좋게 풀어내는 기술은 역시 대가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다. 어렵다는 첫 느낌을 참고 차분히 읽다보면, 비로소 지적인 책읽기의 맛에 빠져든다.
예를 들어 한스 홀바인의 그림 ‘대사들’은 이 책의 주요한 모티브로 등장한다. 그림 속에는 육분의, 복합태양관측기, 9면체, 수학책, 루터파 성가집, 류트, 해골이 놓여 있다. 홀바인의 탁자 위에 놓인 도구들은 당시에 변화를 겪고 있던 작업장을 대변하는 최첨단 물건들이었다. 저자는 기술혁신과 종교개혁 같은 격동의 시대에 맞춰 변해간 외교와 살롱의 예절 같은 소재들을 엮으면서 ‘대화적 협력’이라는 주제를 끌고 나간다.
“정치적 타협을 좌우하는 요인은 정말 면목의 문제, 체면 유지의 문제이다. 체면이란 파트너의 가치를 인정해준다는 뜻이다. 그들을 윽박질러 굴복하게 만들면 역효과가 난다. 온갖 종류의 제휴가 흔히 체면치레용의 소소한 에티켓 문제 때문에 성공하거나 실패하곤 한다. 체면 유지는 협력의 의례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