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 좋게도 노보리벳츠 온천에서 하루를 묵었다.
아, 온천을 하는 동안 눈을 맞을 수 있게 되었군.
몸만 준비하면 되는 거였다. 그리고 한껏 즐길 마음의 여유도.
눈을 맞으며 온천을 하면서 큰 산 하나를 가릴 듯한 눈발에 도취되고, 물이 주는 위로를 태연히 받아들였다. 그동안 온천이란 것을 잘 모르기도 했었고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역시도 물의 성분과 질감이 달라도 많이 다르다는 실감이 들었다. 은밀한 물의 애무를 받아들였다.
도착하기 전부터 눈이었고 마을에 도착해서도 온통 눈이었다. 얼른 방수화를 챙겨 신고 해가 지기 전 마을을 돌아보기 위해 외출을 했다. 우산이 없이는 안 될 것 같은 눈이라 우산을 들고 나왔는데 우산에 내려앉는 눈소리가 여행의 배경음악처럼 귀에 쟁쟁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해마다 겨울만 되면 눈을 쓸었을 것 같은 익숙한 몸짓으로 마을 어르신들이 집 앞에 나와 하염없이 내리는 눈들을 쓸고 계셨다. 나는 그들의 경건한 노동에다 따뜻하게 눈을 맞춰 인사를 드렸다.
마을을 한 바퀴 도는 동안, 마을 전체에 자욱한 눈발과 온천수가 뿜어내는 수증기를 보면서 축복 받은 땅의 유별난 기운을 느끼려고 애를 썼다.
내 인생의 속도를 조금 늦추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산책에서 돌아온 그날 밤과 다음 날 아침, 펑펑 내리는 눈을 맞으면 온천을 즐겼다. 섬세한 자극이 온 몸을 깨우기 시작했다.
누구나 그런 꿈을 가지고 있다.
전국 각지에 삼천 여개의 온천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일본. 나는 일본 사람들의 비밀은 바로 이 온천에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깔끔한 성정과 멋과 맛을 추구하는 삶, 타인에 대한 배려와 유난히 여행을 즐기는 성품, 특별한 조용함과 자존감 등등이 말이다.
삿포로에서 떠나올 때 나는 항상 일본의 <온천 잡지> 한 권을 비행기에 들고 타곤 했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그리 온천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다음에 홋카이도에 오게 된다면 그때는 조금 더 온천과 가까워지리라 맘을 먹으면서 말이다. 내 ‘마음 사전’의 두께가 조금은 두툼해질 것 같기 때문이었다.
이번 여행은 그렇게 되어서 다행이다. 지저분한 나의 내부를 닦아낼 수 있었으니 그것만으로 참 다행이다.
시인 이병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