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원 동양고전학자
승진하거나 영전할 때 받는 임명장을 일컬어 사주학에서는 ‘인수(印綬)’라 한다. 인수에는 관직뿐 아니라 기업이나 사회단체 등에서의 직책도 포함된다. 인(印)은 도장을 의미하고 수(綏)는 허리띠에 도장을 매는 끈을 뜻한다.
옛날에는 관직에 취임할 때 도장을 받았는데 관직의 높고 낮음, 종류에 따라 재질과 생김새가 모두 달랐다. 도장을 받으면 허리띠에 매달기도 하고 대개 몸에 지니고 다녔다. 황제나 임금도 도장을 갖고 있었는데 이 도장은 옥새(玉璽)라 해서 옥으로 만들었다. 이처럼 도장은 관직의 권능을 상징한다. 그런데 관직에 나가 성공하려면 사주에 관운뿐 아니라 인수 운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관운을 볼 땐 관운과 인수 운을 한 쌍으로 보는데 이를 ‘관인상생(官印相生)’이라 한다.
인수가 약하거나 피상(被傷·상처를 입음)하면 부모의 사랑이 부족해 내면이 고독하고 학업성적이 들쭉날쭉하여 진학에 장애가 발생하며 관운이 있어 승진했다가도 오래가지 못하고 자리를 내놓는다.
사주학 고전 중 하나인 ‘연해자평’(淵海子平) 중 계선편(繼善編)에는 인수피상 영화불구(印綬被傷 榮華不久·인수가 손상을 당하면 영화를 오래 유지할 수 없다)라는 구절이 있다. 따라서 인수가 없는 관운은 불완전한 관운이다. 인수 없이 관운만 있으면 주위에 나를 시기하거나 방해하는 이가 많고 시비구설이 항상 따라 다닌다. 나를 끌어주는 상사가 없기 때문에 혼자 힘으로 일어나야 한다.
보통 인수가 잘 구비되어 있는 사람은 책임감이 있고 배려심이 있고 따뜻하며 봉사정신이 있는 등 좋은 인성을 갖고 있지만 인수 없이 관운만 있는 사람은 인성보다는 술수와 음모가 강하고 정치공학적 능력이 발달하게 된다.
명나라 주원장(朱元璋)의 참모이자 개국공신인 유기(劉基)라는 인물이 있었다. 자가 백온(伯溫)이라 유백온이라고 불렸다. 그는 ‘삼분천하 제갈량(三分天下諸葛亮·천하를 셋으로 나눈 것은 제갈량)이요 일통강산 유백온(一統江山劉伯溫·강산을 하나로 통일한 것은 유백온)’이란 말이 전해 내려올 정도로 중국 역사에서 제갈량이나 장자방과 종종 비교되는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 자신도 제갈량보다 낫다고 믿었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자주 말하곤 했다. 유백온은 제갈량처럼 정치가, 학자, 시인이자 군사(軍師)였다. 그는 주원장을 도와 명나라를 건국하는 데 큰 공을 세운 뛰어난 인물이었으며 ‘적천수(滴天髓)’라는 책을 남기기도 했는데 이 책은 사주학을 공부하는 이들이 반드시 읽어야 하는 필독서 중 하나다.
그는 23세에 원나라에서 진사시험에 합격하였으나 능력에 비해 하위직을 받아 탐관오리들에게 이리저리 치이다가 40대 후반에 낙향하였다. 그러다 그의 명성을 전해 들은 주원장(후에 명나라 초대 황제)의 부름에 응해 참모가 되었다.
유백온은 1363년 장시 성의 큰 호수인 포양 호에서 20만 명의 병력으로 천하 패권을 다투던 진우량의 60만 대군을 격파했다. 이 전투는 한 달 넘게 진행되었는데 유백온은 제갈량이 적벽대전에서 썼던 것처럼 화계(火計)를 써서 적군을 섬멸했다. 이로써 주원장은 중국을 통일하고 명나라를 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개국공신을 대상으로 논공행상(論功行賞)을 할 때 유백온은 사방에서 견제를 받아 낮은 관직을 받게 되었다. 결국 관직에 환멸을 느껴 낙향하고 말았다. 그 후 병을 얻어 65세에 세상을 떴다.
유백온의 인생에서 보듯 인수 운이란 이렇게 중요한 것이다. 어머니 사랑, 학문에서의 성공, 상사의 보호와 밑으로부터의 존경 등 인생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누리는 많은 성취가 ‘인수’ 운과 관련되어 있다.
김재원 동양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