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까지 정치인들은 아호(雅號)로 불렸다. 우남 이승만, 백범 김구, 해공 신익희, 유석 조병옥, 죽산 조봉암…. ‘이 박사’ ‘조 박사’처럼 당시 흔치 않은 박사 학력을 붙여 무게감을 더하기도 했다. 1970년대에는 영문 이니셜 호칭이 등장했다. ‘JP’(김종필 전 국무총리) ‘HR’(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처럼 공화당 실세들이 영문 약자로 불리며 위세를 과시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과 청와대 안팎에서 ‘프레지던트 박’을 뜻하는 ‘PP’로 불렸다. ‘3김 시대’ 이후엔 ‘YS’(김영삼 전 대통령) ‘DJ’(김대중 전 대통령) ‘MB’(이명박 전 대통령)가 대통령 호칭으로 굳어졌다.
▷미국에서도 대통령을 ‘JFK’(존 F 케네디)처럼 약칭으로 부르긴 하지만 우리처럼 많이 쓰이지는 않는다. ‘정직한 에이브’(미국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처럼 이름이나 성격, 재직 중 업적 등에 대한 평가가 녹아 있는 애칭이 많다. 한국 사회에서 이니셜 애칭이 생겼다는 것은 힘이 세졌다는 신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은 MB가 대권에 도전한 뒤 ‘SD’라는 호칭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대권을 노리는 일부 중진 의원은 대놓고 기자들에게 자신의 이니셜을 불러주며 애용해 달라고 주문한다. 1992년 대선에 출마한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도 경쟁자인 YS나 DJ처럼 자신을 ‘CY’로 불러달라고 요청했다는 후문이 들린다.
박용 논설위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