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세대 침입 성폭행 9건 ‘가스관타기 꾼’ 구속
경찰은 인근 폐쇄회로(CC)TV에 찍힌 영상을 단서로 11일 박모 씨(56·경기 고양시)를 검거했다. 박 씨가 추가 범행을 저질렀을 개연성을 염두에 둔 경찰은 이 일대에서 발생한 유사 범죄를 조사하다가 깜짝 놀랐다. 박 씨는 전과 14범의 속칭 ‘가스관 타기 꾼’이었다.
그는 2년간 240여 차례 가정집에 침입해 5억 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혐의(야간주거침입절도)로 2003년 12월 구속됐다. 당시 ‘낮엔 건축업자 밤엔 도둑’이라는 제목으로 본보에 보도되기도 했다.
더 놀라운 것은 박 씨가 이 16차례의 절도 외에도 여성 혼자 사는 집에 침입해 성폭행을 일삼아 온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2002년부터 올해 1월까지 이 지역에서 발생한 성폭행 미제 사건 가운데 9건이 DNA 검사 결과 박 씨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성폭행을 저지른 기간 동안 경찰에 절도로 두 차례 구속됐지만 2010년 7월 관련법이 시행되기 전까지는 절도범의 DNA 정보를 동의 없이 수집할 수 없었기 때문에 박 씨의 성범죄가 드러나지 않았던 것.
서울 서부경찰서는 박 씨를 강도강간 및 상습절도 혐의로 구속했다고 19일 밝혔다. 박 씨는 과거 건설업자로 일해 번 돈으로 BMW 오토바이를 타고 13억 원 상당의 땅을 소유하고 있는 자산가로서 아내와 두 딸을 둔 가장이다. 그러나 남의 집에 몰래 들어가는 것에 쾌감을 느껴 범행을 멈추지 못했다.
박 씨의 범행 도구는 아파트나 다세대주택 외벽에 설치된 ‘가스관’이었다. 운동을 꾸준히 해 온 박 씨가 가스관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가는 데는 불과 2, 3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초저녁 무렵 BMW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다니며 범행 장소를 물색했고 범행 장소에도 오토바이를 타고 갔다. 가스관을 타고 발코니 창문으로 접근하기 좋은 다세대주택 2층을 주로 노렸다. 담이나 주차된 승합차를 딛고 올라가기 좋은 곳도 대상에 포함됐다. 발코니 창문이 잠겨 있을 때는 준비해 간 드라이버를 문틈으로 넣어 잠금고리를 풀고 들어갔다. 밖에서 불이 꺼진 것을 확인하고 집으로 들어갔다가 잠든 사람이 있으면 깨지 않도록 조용히 물건을 훔쳐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집 안에 여성이 혼자 있으면 성폭행했다.
이처럼 아파트나 다세대주택 외벽에 설치된 가스관을 이용한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8일에는 충남 서산시에서 전국을 돌며 가스관을 타고 아파트에 침입해 9차례에 걸쳐 6060만 원 상당의 현금과 귀금속을 훔친 김모 씨(41) 등 2명이 경찰에 구속됐다.
관련 범죄가 잇따르지만 문단속 외에는 현실적으로 뚜렷한 예방법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원천적으로 이 같은 범죄를 막기 위해 최근에는 아파트 외벽 대신 내부에 가스관을 설치하는 추세도 증가하고 있다.
주애진·김호경 기자 ja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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