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소녀는 풋풋한 사랑을 끝내 경험하지 못했다. 자살이란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그녀가 남긴 유언. “다음에 태어나면 이 세상의 모든 남자와 입맞춤을 하고 싶어요.”
소녀가 묻힌 자리에서 풀이 돋아났다. 바로 담배. 남자 흡연자가 여자보다 많으니 소녀는 소원을 이룬 것일까.
한반도에 담배가 전래된 시기는 17세기 이후로 보인다. 의약품이 부족하던 시절, 담배는 특효약으로 여겨졌다. 복통이나 치통, 고름 치료에 썼다. 1614년 발간된 국내 최초의 백과사전인 ‘지봉유설’에서 이수광은 “담배가 담(痰)을 제거하고 술을 깨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흡연은 큰 흉이 되지 않았다. 버스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승객도 볼 수 있었다. 공공장소에 꽁초가 나뒹구는 모습은 익숙한 풍경이었다. 이제는 ‘호랑이 담배 피우는 시절’의 이야기다. 백해무익하고 암을 유발하는 주범일 뿐. 담배도 감정이 있다면 심한 격세지감을 느낄 것 같다.
이제 담뱃값 인상을 놓고 시끄러운 2013년을 이야기해보자.
2500원짜리를 4500원으로 올리자는 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이 법안이 시행된다면 하루 한 갑을 피우는 흡연자의 경우 지출이 월 7만5000원에서 13만5000원으로 늘어난다. 경제적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안 피우면 되지, 뭘 그리 걱정하느냐고 할 사람도 있겠다.
현재 담배판매 수입 중 일부를 국민건강증진부담금으로 적립한다. 담배 한 갑당 354원. 이렇게 해서 2011년 모인 부담금은 1조6355억 원이었다. 이 가운데 65%인 1조631억 원이 건강보험 혜택을 늘리는 데 사용됐다.
문제는 흡연자로부터 거둔 돈인데 정작 흡연자의 건강 증진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2011년의 경우 부담금의 1.5%(246억 원)만이 금연사업에 쓰였다. “정부가 중증질환 건강보험 혜택 강화 공약을 이행하기 위한 재정을 확보하려고 담뱃값을 무리하게 인상하는 것이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부담금은 한 갑당 1146원으로 크게 오른다. 하루 한 갑을 피우는 흡연자가 내는 부담금은 연간 13만 원에서, 29만 원이 오른 42만 원이 된다. 개정안에 금연사업 비율을 10%로 늘린다는 단서가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도 “부담금이 늘어나면 저소득층의 금연사업에 우선 투자하겠다”고 말했다.
가격을 인상하면 흡연율이 떨어지는 효과는 분명히 있다. 또 미국과 유럽보다 담뱃값이 훨씬 낮은 것도 사실. 그래도 일방통행식 가격 인상은 옳지 않다. 게다가 저소득층일수록 흡연자가 더 많은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 그들이 거의 두 배나 오른 담뱃값을 감당할 수 있을까.
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sanh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