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희(1960∼)
누가 반쯤 가린 세상을 보려고 나는
창을 닦기도 하고
정기구독해서 숙독하기도 하고
라디오와 텔레비전 뉴스를 경청하기도 하고
친구들과 소주를 나눠 마시며
역사와 광기를 얘기하기도 하고
하루를 곁눈질해 보기도 하고
이곳과는 다른 세상이 있다는 곳으로
총알택시를 타고
휙, 휙, 휙, 휘익
처진 걸음으로 돌아와 다시 내 몫의 죄를 끌고
이 골목 저 골목 다니다가
짓무른 다리에 약을 바르며 나는
누가 어디론가 보내 버린 이곳의 절반 이상이
내용증명으로 배달되어 오길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누가 반쯤 가린’ 듯 뿌연 이 세상. 세상이 부조리해서인가, 아니면 내 눈이 어두워서인가? 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어떻게 사는 게 현명하고 바른 길인지, 제대로 알고 싶어 화자는 열심히 신문과 잡지를 읽고 라디오와 텔레비전 뉴스를 두루 살피고, 자기처럼 사는 친구들 생각에도 귀 기울인다. 그리고 어디 납득할 만한 삶의 현장이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지체하지 않고 달려가서 보지만, 역시 잘 모르겠다. 답답하다. 이렇게 반쯤 눈을 가린 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이제 화자는 터덜터덜 골목쟁이의 자기 집에 돌아와 ‘기다리고/기다리고/또 기다린’단다. 뭘 기다린다는 걸까?
막연한 걸 기다리지 마세요. 기다리는 건 사실 습관일 뿐입니다. 그게 편한 것이지요. 보세요. 당신은 ‘누가 반쯤 가렸다’고 하네요. ‘누가 어디론가 보내버렸다’고 하네요. 당신이 지금 요러고 사는 게 다 남의 탓이네요. 당신 의지는 어디 있나요? 세상의, 삶의 진면모를 알고 싶다면서 기껏 신문 잡지를 읽고 라디오와 텔레비전 뉴스를 듣네요. 당신을 통째로 내맡기고 있는 그 미디어 매체들이 이미 세상의 반을 가리고 있는 것을요. 그렇지 않다 해도 그렇게 눈이랑 귀만 갖고 살아서야 어찌 세상을 알 수 있을까요. 바짓단 숭숭 걷고 맨 종아리로 어디 논에라도 들어가 봅시다. 몸에 땀도 묻히고 거머리도 묻혀 봅시다!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