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석 승객 있어도 시속 100km… 광역버스 출퇴근 목숨 건다
[시동 꺼! 반칙운전] 레이싱 벌이는 광역버스
○ 제한속도 20km 초과는 기본
취재팀이 직접 승차한 버스들은 모두 승객 수십 명을 태운 채 도로를 질주하는 시한폭탄과 마찬가지였다. 수색로 반포로 등 아파트와 학교가 밀집해 유동인구가 많은 주거 지역에서도 시속 80km를 넘을 때가 있었고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자유로 의왕나들목 등 자동차전용도로에서는 지그재그로 차로를 바꾸며 속도를 높였다.
영등포∼파주를 왕복하는 1500번 광역버스는 제한속도가 60km인 고양시 대화역 부근에서 80km를 넘나들며 과속을 일삼았다. 수원과 강남·양재를 잇는 3007번 7000번 7001번 광역버스도 도심을 빠져나가기 무섭게 속도를 올렸다.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자유로나들목과 과천봉담고속도로의 의왕나들목 등 자동차전용도로 외에 제한속도가 시속 60km인 도심 지역에서도 버스는 상습적으로 빠르게 달렸다. 3007번 버스 이용객 이모 씨(41)는 “버스의 난폭운전이 너무 심하다. 마치 흉기로 위협을 당하는 듯한 불안감에 화가 나 운수업체에 전화할 생각도 했다”고 했다. 일부 광역버스에는 일정 속도를 넘을 경우 과속 주의를 당부하는 경고음이 나오는 장치가 되어 있지만 상당수 버스는 이런 장치 없이 운행되고 있다.
디지털운행기록계를 분석한 결과 이들 노선을 운행하는 A, B업체 2곳의 버스는 운행거리 10km마다 평균 12.6차례 과속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과속 횟수는 제한속도보다 시속 20km 이상 높은 속도로 달리는 경우 1초마다 1건으로 계산된다. 광역버스의 왕복노선 거리가 평균 50여 km인 점을 감안하면 1회 운행마다 평균 62차례 과속을 하는 셈이다. 서울에서 일산 수원 파주 등을 잇는 광역·좌석버스가 대부분인 A, B운수회사가 2011∼2012년에 낸 사고만 94건으로 4명이 죽고 201명이 다쳤다.
○ 시속 10km로 달리다 충돌해도 아찔한데…
교통안전공단 교육개발처 하승우 교수는 “안전띠를 하고 손잡이를 꼭 잡으세요”라고 당부했다. 서행 중이었지만 급브레이크가 걸린 순간 좌석에 앉아 있던 기자는 앞좌석에 머리를 부딪칠 정도로 강한 충격이 전달됐다. 하 교수는 “시속 100km로 충돌하면 승객이 중상을 입을 확률이 99.9%다. 시속 48km로 충돌했을 때보다 중상 가능성이 9배나 높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1월 경기 안산시 팔곡동 수인산업도로에선 김모 씨(50)가 몰던 707번 시내좌석버스가 전복됐다. 승객 40여 명을 태운 채 제한속도를 시속 30km나 넘긴 110km로 운전한 탓이다. 이 사고로 1명이 숨지고 2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커브 구간에서 중심을 잃은 것이 원인이었다. 이처럼 버스는 한 번의 사고만으로 2명 이상 죽거나 6명 이상이 중상을 입는 ‘중대교통사고’를 매년 40여 건씩 발생시킨다.
전체 버스 교통사고 건수는 매년 8000여 건. 매년 3만여 건 발생하는 택시 교통사고 건수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지만 사망자 수는 별반 차이가 없다. 2010년의 경우 버스 교통사고는 8300여 건, 택시 교통사고는 그 3배가 넘는 2만8000여 건이었지만 사망자는 버스 사고가 더 많았다.
○ 목숨 담보로 한 고속도로 서서 가기
이러한 위험 때문에 도로교통법상 자동차전용도로를 운행하는 광역버스가 승차 정원을 어길 경우 운전사에게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리도록 규정했지만 취재팀이 출퇴근 시간대 광역버스 탑승 실태를 취재한 결과 대부분의 버스가 입석 승객을 태운 채 고속도로 등 자동차전용도로에서 시속 90km를 넘나드는 곡예운전을 했다. 이런 문제는 10여 년째 제기되고 있지만 ‘출퇴근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고쳐지지 않고 있다.
버스 과속은 보행자에게도 큰 위협이다. 2011년 버스에 치여 사망한 보행자는 117명. 회사원 정모 씨는 “중앙차로 정류장에 서 있을 때 광역버스가 과속으로 지나가면 아찔하다”며 “언젠가 정류장을 덮치는 대형 참사가 나야 과속을 단속할 거냐”고 목청을 높였다.
서동일·조건희 기자 d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