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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리더의 취향]직원들을 가족처럼 보듬는 CEO… 스키·스쿠버다이빙의 스릴 즐겨요

입력 | 2013-03-21 03:00:00

홍병의 시슬리코리아 사장




홍병의 시슬리코리아 사장이 사무실 직원들과 함께 찍은 ‘강남스타일’ 패러디 뮤직비디오 속 복장을 재현했다. 홍 사장은 매장 직원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차원에서 이런 ‘깜짝 이벤트’를 마련했다고 전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1월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프랑스 화장품 브랜드 시슬리의 신제품 발표회장. 화이트닝 신제품 콘셉트에 맞게 하얗고 순수한 이미지로 꾸며진 곳에서 느닷없이 싸이의 ‘강남스타일’ 음악이 흘러나왔다. ‘A급’의 럭셔리 자연주의 화장품과 ‘B급’ 정서가 물씬 묻어난 ‘강남스타일’의 결합이라니….

참석자들은 모두 스크린 속에서 흘러나오는 영상과 음악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영상은 시슬리코리아의 사무실 직원 35명이 펼치는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 패러디였다. 그 가운데 가장 열심히, 그러나 가장 어정쩡한 자세로 춤을 추고 있는 신사는 바로 행사 시작 직전 참석자들을 우아한 미소로 맞이했던 홍병의 사장(55)이었다. 홍 사장은 까만 나비넥타이까지 매고 제대로 말춤 스텝을 밟아댔다. 지난달 말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시슬리코리아 본사에서 만난 홍 사장은 “매장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기획한 것이었는데 반응이 좋아 신제품 발표회장에서도 선보이게 됐다”며 멋쩍게 웃었다.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 패러디에는 자청해 출연한 건지….

“매년 연말 지방을 돌며 매장 직원들과 송년회를 하는데 늘 이들이 바쁜 시간을 쪼개 최선을 다해 장기자랑을 준비해 오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뭉클했어요. 사무실 직원들은 송년회장에서 현장 직원들을 평가하는 역할을 주로 해왔는데 그건 공평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본사 직원들에 ‘이번엔 우리가 망가져 보자’고 말했어요.”

―1998년에 시슬리코리아를 설립하고 지금까지 최고경영자(CEO)로 장기 근무해오셨는데요.

“한국법인이 생기기 전 해태상사에서 약 7년간 시슬리 화장품을 수입하는 업무를 했어요. 이렇게 오랜 인연 덕에 본사의 필리프 도르나노 사장과는 막역한 사이가 됐습니다. 도르나노 사장은 한국에 올 때 종종 북한산 등산을 즐기는데 지난해엔 등산을 마친 뒤 한 시슬리 매장 직원의 집에 모두 함께 가 맥주와 치킨을 시켜 먹기도 했어요. 도르나도 사장은 막걸리나 두부김치 같은 전통적인 음식도 즐깁니다.”

―분위기가 남다른 비결이 있나요.

“저희는 본사 직원이나 매장 직원이나 모두 시슬리코리아 직원이에요. 주요 수입화장품업체 중에 유일하게 노조가 없다는 점도 독특하죠. 직원들 사이에 이른바 신분의 차이가 없다 보니 수평적인 문화가 자연스레 생기죠. 거대한 인수합병(M&A) 바람에 휩쓸리지 않고 가족경영을 유지하고 있는 본사 분위기와도 관계가 있는 것 같고요. 저는 전 직원에게 한 달에 두 번씩 개인적인 e메일을 보내라는 숙제를 시켜요. 현장의 분위기를 간접적으로나마 생생하게 듣고 싶기 때문이죠.”

―만능 스포츠맨이라고 들었어요.

“가장 좋아하는 건 스키예요. 대학 때 뭐가 좋은지 모르고 타기 시작했지만 진정한 스키의 즐거움을 알게 된 건 쉰이 넘어서부터였던 것 같아요. 스키를 타고 내려오는 스릴만큼 리프트에 앉아 산과 나무, 설원을 보는 즐거움이 크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그래서 일행들과 함께 스키를 타러 가서도 아침 일찍 일어나 혼자 두 시간 정도 스키를 타다 오곤 해요.”

그가 평소 즐기는 운동을 보여주기 위해 켠 컴퓨터 모니터에선 스쿠버다이빙을 즐기고, 자전거를 타는 모습도 있었다. 스쿠버다이빙은 1980년대에 미국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딴 뒤 현지 회사에 근무했을 때 배웠다.

“여전히 물속에 들어가기 전엔 검고 추운 바닷물에 꼭 뛰어들어야 하나 마나 고민해요(웃음). 하지만 일단 들어가면 바다 생물들을 보는 재미에 푹 빠져버리죠.”

홍 사장은 ‘자출족(자전거로 출근하는 사람들)’계의 트렌드 세터로도 통한다. 7년 전부터 작년까지는 동부이촌동 집에서 강남의 사무실까지 거의 자전거로 출퇴근했다.

“그동안 자전거 인구가 20배가 늘어났어요. 옛날엔 ‘자출족’이 많지 않다 보니 같은 시간대에 같은 길을 스쳐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알아볼 정도였는데 요즘은 충돌이 두려워요. 그래도 미련은 못 버려 휴일에 교외에서 타요.”

한국은 시슬리에 있어 자국인 프랑스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시장이다. 1998년 법인 설립 당시 60명이던 직원은 현재 400명에 육박할 정도로 늘어났다.

그는 이제 수입화장품의 성장세가 한계에 다다른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시장이 성숙되는 자연스러운 단계로 충성 팬이 많은 브랜드는 오히려 견고하게 성장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차별화될 수 있는 건 ‘사람’과 제품 자체예요. 시슬리는 10년 이상 근무한 판매사원이 많다 보니 전문성이 남다르죠. 마케팅이나 영업전략은 서로 모방이 가능해 비슷해지더라도 사람과 제품의 힘은 변치 않거든요.”

15년간 시슬리코리아를 이끌어오면서 그는 직원끼리의 화합을 가장 큰 자랑으로 꼽았다. “본사도 분위기가 좋아 사내 결혼이 유독 많아요. 이 나이에 벌써 사내 커플 주례만 세 번이나 섰답니다(웃음).”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