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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건영통신원의 네버엔딩스토리] 제러드 위버, 마운드에 새긴 ‘NA’는 위버의 꿈

입력 | 2013-03-21 07:00:00

LA 에인절스의 에이스 제러드 위버는 4년 전 하늘로 먼저 떠난 친구 닉 아덴하트를 기리며, 마운드에 오를 때마다 그의 이니셜을 새겨넣는다. 과연 위버는 올 시즌 친구의 영전에 우승반지를 선물할 수 있을까. 동아닷컴DB


■ LA 에인절스 에이스

지역연고선수를 우선 지명하는 한국프로야구에선 해태 선동열, 롯데 최동원, 삼성 이만수 등 자신이 나고 자란 곳에서 팀의 간판스타로 자리매김하는 선수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반면 메이저리그나 NBA 등 미국 프로스포츠에선 이런 사례가 극히 드물다. 그러나 LA 에인절스는 조금 특이하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팀의 에이스인 제러드 위버를 비롯해 CJ 윌슨, 제이슨 바르가스, 토미 핸슨까지 선발투수 5명 중 4명이 LA 인근에서 태어났다. 백업 포수로 활약이 기대되는 최현(미국명 행크 콩거)도 시애틀에서 출생했지만, 애너하임과 가까운 헌팅턴비치고교를 졸업했고, 좌익수 겸 지명타자 마크 트롬보와 셋업맨 케빈 젭슨의 고향도 애너하임이다. 에인절스는 지난해 300만 명 이상의 관중을 동원한 메이저리그 9개 구단 가운데 하나다. 오프시즌에 조시 해밀턴을 영입해 막강 타선을 구축한 에인절스는 홈팬들에게 친숙한 지역연고스타들을 앞세워 성적과 흥행,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그 중심에는 위버가 있다.

교통사고로 세상 떠난 친구 기리는 의식
등판때마다 월드시리즈 우승 염원 담아

LA토박이…LA유망주∼프랜차이즈 스타
신인드래프트 악운에도 1년만에 ML 승격
2010년, 팀 1선발·AL 탈삼진 1위 영예
벌랜더와의 경쟁…신인왕·사이영상 불운


○LA 토박이, 에인절스 프랜차이즈 스타로!

1982년생 위버는 그야말로 LA 토박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태어난 시미밸리는 LA 다운타운에서 북서쪽으로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위치한 곳이다. 시미밸리고교를 졸업한 뒤 야구 명문 칼스테이트 롱비치대학으로 진학한 위버는 졸업반이던 2004년 15승1패, 방어율 1.62의 뛰어난 성적을 거둬 대학 최고의 선수에게 주어지는 딕 하우저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당시 LA 타임스는 2001년 USC(서든캘리포니아대학)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마크 프라이어에 견줄 만한 실력을 지녔다는 평을 내리기도 했다.

신인드래프트 전체 1순위 후보였던 위버는 그러나 12번째로 에인절스에 지명됐다. 그 이유는 바로 에이전트 스콧 보라스 때문이었다. 프라이어처럼 계약금 1050만달러는 받아야 한다는 보라스의 고압적 태도에 상위 지명권을 지녔던 구단들이 위버를 외면했다. 에인절스와의 협상도 진통을 겪었다. 위버는 2005년 5월 계약마감시한에 임박해서야 간신히 사인했는데, 사이닝보너스는 400만달러에 그쳤다. 이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에이전트 보라스가 자신의 뜻을 제대로 관철시키지 못한 굴욕적 케이스 중 하나였다.

그러나 위버는 계약한지 361일 만에 메이저리그로 승격하는 신화를 썼다. 입단 이듬해인 2006년 트리플A에서 6승1패, 방어율 2.10의 놀라운 성적을 거두고 있을 때, 2005년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을 받은 팀의 에이스 바르톨로 콜론이 부상자 명단에 오르자 에인절스는 위버에게 메이저리그 승격을 통보했다.


○될성부른 떡잎에서 에이스로!

위버는 2006년 5월 28일 메이저리그 데뷔전인 볼티모어전에서 7이닝 3안타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6월에도 등판한 3경기에서 모두 승리했지만, 콜론이 다시 로스터에 합류하면서 마이너리그로 잠시 강등됐다. 위버는 7월 1일 빅리그로 다시 승격됐는데, 그 대신 로스터에서 빠진 투수는 다름 아닌 친형 제프 위버였다. 루키시즌 성적은 11승2패, 방어율 2.56. 시즌 초반부터 빅리그에서 뛰었더라면 2006년 아메리칸리그 신인왕은 저스틴 벌랜더(17승9패·방어율 3.63)가 아닌 위버의 차지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2007년에는 초반 4경기에서 1승3패로 부진을 보여 ‘소포모어 징크스’에 시달리는 듯했지만 후반기 분전으로 13승7패, 방어율 3.91을 기록했다. 2008년에는 진기록을 수립했다. 6월 29일 LA 다저스와의 원정경기에서 6회까지 볼넷 3개만 허용했을 뿐, 1개의 안타도 맞지 않았다. 이어 등판한 호세 아레돈도 2이닝 무안타. 그러나 0-1로 에인절스가 패하면서 위버에게 돌아온 것은 패전의 멍에였다. 8회까지 안타를 내주지 않고도 홈팀에 리드를 당해 9회말 수비에 나서지도 못한 역대 4번째 사례였다. 위버는 그해 정규시즌을 11승10패로 마감했지만, 최악의 방어율(4.33)을 기록했다.

2009년 6월 15일 인터리그 샌디에고 파드리스전에서 9이닝 5안타 무실점으로 생애 첫 완투를 완봉승으로 장식한 위버는 6일 뒤 다저스전에 선발로 나섰는데, 상대 투수는 공교롭게도 친형 제프였다. 형 대신 메이저리그 로스터를 차지한지 약 3년 만에 적이 되어 선발로 맞대결을 펼치는 얄궂은 운명을 맞았다. 그러나 ‘형만 한 아우 없다’는 말처럼 5.1이닝 6실점의 부진으로 제프(5이닝 2실점)에게 무릎을 꿇고 패전투수가 됐다. 그해 211이닝을 소화하며 16승8패, 방어율 3.75로 시즌을 마친 위버는 에인절스 최고의 투수에게 주어지는 ‘닉 아덴하트 상’을 차지했다. 아덴하트는 그해 4월 10일 경기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교통사고를 당해 23세의 나이로 요절한 에인절스의 신예 투수였다.

2010년은 에인절스의 에이스로 도약한 해다. 스프링캠프에서 동료 스콧 실즈와 호엘 피네이로에게 투심패스트볼을 전수받은 위버는 존 래키가 보스턴 레드삭스로 이적해 개막전 선발투수의 영예를 안았고, 부상한 CC 사바시아를 대신해 올스타에도 처음 뽑히기도 했다. 타선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해 13승(12패)에 그쳤지만 233개의 삼진을 잡아내 아메리칸리그 탈삼진 1위에 올랐다.

○월드시리즈 우승, 하늘로 먼저 떠난 친구를 위하여

2011년 첫 6경기에서 전승을 거두며 0.99의 방어율을 기록한 위버는 올스타전에서 아메리칸리그 선발투수로 마운드에 오르는 영예를 안았다. 팀의 간판투수로 성장하자 에인절스는 8월 5년간 8500만달러의 조건으로 계약연장에 합의했다. 18승8패로 정규시즌을 마감했는데, 방어율 2.41로 벌랜더에게 0.01점차로 뒤졌다. 사이영상에서도 24승을 따낸 벌랜더에 이어 2위에 그쳐 아쉬움을 남겼다.

2012년 5월 3일 홈경기 미네소타 트윈스전에서 위버는 생애 첫 노히트노런의 기쁨을 누렸다. 볼넷 1개와 포수 크리스 이아네타의 패스트볼로 2명의 주자만 내보냈을 뿐 탈삼진 9개를 곁들이며 완벽한 경기를 펼쳤다. 한동안 허리가 좋지 않아 부상자명단에 오르기도 했지만 20승(5패)으로 아메리칸리그 다승 공동 1위, 승률(0.800) 1위, 방어율(2.81) 3위로 벌랜더와 함께 메이저리그 최고 우완투수의 반열에 올랐다.

루키시즌부터 7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따낸 위버는 마운드에 오를 때마다 뒤편 흙에 ‘NA’를 새겨 넣는다. 4년 전 음주 운전자에게 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난 아덴하트를 기리기 위해 이니셜을 쓰는 것.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어 하늘나라로 먼저 간 아덴하트에게 자랑스러운 친구가 되고 싶다는 그의 소박한 바람이 올해 반드시 이뤄지기를 많은 에인절스 팬들이 간절히 바라고 있다.

스포츠동아 미국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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