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아보세’ 구호가 다시 등장했다. 경제부총리제는 5년 만에 되살아났다. 경제 분야 양대 요직인 경제부총리와 경제수석 자리를 옛 경제기획원(EPB) 라인이 모두 꿰찼다. ‘잘 살아보세’ 구호, 경제부총리, EPB는 모두 박정희노믹스를 이루는 골조였다. 박근혜노믹스가 박정희노믹스의 개정판임이 분명해진 현 시점에서, 경제부총리론을 이야기하려면 박정희 정권에서 가장 큰 족적을 남긴 3명의 부총리를 다시 떠올려 보지 않을 수 없다.
장악력, 신임, 소신의 부총리들 #왕초 장기영
EPB 시절 경제 관련 중요한 의사결정은 부총리 집무실에 딸린 작은 회의실에서 비공식 경제장관회의를 통해 대부분 이뤄졌다. 장기영 부총리는 식전인 오후 6시경 회의를 소집하는 일이 많았다. 그는 장관들에게 토론을 하게 한 뒤, 자신은 적당한 핑계를 대고 자리를 떠 떡으로 요기를 했다(골치 아픈 현안이 있을 때는 미리 떡을 준비하라고 비서실에 지시를 해놓았다). 그리고 모든 참석자들이 배가 고파 녹초가 됐을 시간에 나타나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 정책을 몰고 갔다. 이런 편법도 마다 않으면서 다른 장관들을 한 손에 장악했다. ‘왕초’라는 별명은 이래서 나왔다.
#절대 신임 남덕우
뛰어난 경제학자였던 남덕우 부총리는 박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을 받았다. 재무장관으로 5년, 경제부총리로 4년 3개월 재임했다. 그는 1978년 12월 총선 참패에 대한 ‘총대’를 메고 부총리직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불과 20일 만에 경제특보로 그를 다시 불러들였다.
#소신파 신현확
신현확 부총리가 취임한 1978년 말 한국 경제는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었다. 다음은 내무부가 대통령에게 농촌주택개량사업에 대해 보고하는 자리에 그가 배석했을 때 벌어졌던 일이다.
브리핑 내용이 ‘개량사업 대상 주택 수는 3만 호’라는 대목에 이르자, 박 대통령은 신 부총리에게 “예산을 늘려 사업 대상을 9만 호로 확대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신 부총리는 “노(No)”라고 대답했다. 재정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이유였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답변에 어색해진 분위기 속에서 브리핑이 재개됐다. 박 대통령이 브리핑 중간에 다시 끼어들었다. “신 부총리, 9만 호는 많다 치고, 6만 호로 늘립시다.” 하지만 신 부총리의 대답은 또 한 번 “노”였다. 박 대통령은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말없이 정면만 응시했다.
장기영 부총리 등의 사례를 보면 경제부총리의 성공 요건은 장악력, 대통령의 신임, 소신으로 요약된다.
현오석 부총리 후보자의 경우, 장악력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시선이 많다. 대통령의 신임도 아직 물음표다. 인사청문 과정에서 제기된 각종 의혹 때문에 많은 흠집이 났고, 야당의 반대로 청문보고서 채택도 무산됐다. 청와대와 여당이 임명을 강행하려는 분위기여서 낙마 가능성은 낮다고 하지만, 임명장을 받아도 부총리로서 ‘영(令)’이 설지 걱정이다.
그렇다고 해서 성공한 부총리가 될 수 있는 길이 아주 막혀버린 것은 아니다.
현 후보자, 두번 ‘NO’ 할수 있을까 박근혜 대통령은 약속 이행을 중시하고, 현안을 꼼꼼히 챙기는 스타일이다. 현 부총리의 장악력이나 추진력이 미흡해도, 대통령이 직접 주요 국정과제를 밀고 나갈 것이다. 복지공약이나 경제민주화 공약에 대해서는 여당은 물론이고 야당도 브레이크를 걸지 않고, 오히려 등을 떠밀 것이다.
이런 흐름이 도를 넘어서면 재정과 성장잠재력은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된다. 현 후보자가 지난해 11월 “대선 후보들이 당선되고 나서 공약을 실천한다고 할까 봐 더 걱정”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점을 누구보다 잘 알아서일 것이다.
두 번 “노” 할 수 있는 소신이 있다면, 훗날 나라곳간을 지켜낸 훌륭한 부총리라는 평가를 받게 될 개연성이 얼마든지 있다. 물론 임명장을 받은 이후의 이야기지만….
천광암 경제부장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