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야에서 내가 만난 사람은 이미 13년 전에 세상을 떠난 한 일본인이었다. 공연장 무대에는 그의 초상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생전 모습이 동영상으로 비치고 있었다. 지적이고 예민한 인상의 일본인이 재일 한국교포들과 어울려 꽹과리를 치며 신명나게 어깨춤을 추고 있었는데, 그는 주쿄(中京)대의 이나가키 마사토(稻垣眞人) 교수라고 했다.
얼굴도 이름도 몰랐던, 그리고 이미 세상을 떠난 지 오래된 그의 존재를 알게 된 인연은 장사익 선생으로부터 비롯되었다. 2000년 2월에 재일교포 채효(蔡孝) 씨와 함께 우리 전통가락을 공부하는 ‘놀이판’을 이끌어 온 이나가키 교수가 위암으로 사경을 헤매자 놀이판 회원들은 장사익 선생 초청공연을 주선했다. 평소 그의 소원이 나고야에서 장사익 콘서트를 여는 것이라고 말해왔기 때문이다.
그런 사연이 있어 장사익 선생은 13년 만에 다시 그를 찾아갔고, 나는 장사익 선생과의 인연으로 추모공연에 가게 되었다. 나고야에 머문 3일 동안, 그리고 서울에 돌아와서도 내내 사람의 인연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나고야까지 달려가 세상에 계시지도 않는 분을 만나고 왔다는 것은 분명 알지 못할 힘의 작용이다. 간절히 원하는 그 한 사람을 위해서 공연을 할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음, 먼저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며 해마다 추모공연을 벌이는 놀이판 사람들의 한결같고 오롯한 마음이 없었다면 이루어질 수 없었을 만남이다.
그날, 놀이판 사람들이 일본식의 한국어 발음으로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를 부르고 비나리와 판소리와 사물놀이를 연주할 때, 일본 땅에서 듣는 우리 가락은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이들은 또 무슨 인연으로 나고야에 뿌리를 내려 타국에서 시리고 서러운 세월을 보내게 된 걸까.
죽어서도 산다는 말이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이 세상에 남아 있는 한, 죽었다고 해도 세상과 영영 이별한 게 아니다. 인생이 비록 일장춘몽일지언정 인연의 끈은 이리도 질기고 신비롭기만 하다. 하물며 가까운 인연으로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 새삼스럽게 귀하고 귀하다.
윤세영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