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을 부추기는 세상에서 ‘희망의 귀환’ 책 펴낸 차동엽 신부
차동엽 신부는 “강의를 다니다 보면 아무리 지쳐 있는 사람도 희망을 이야기하면 자세를 고쳐 앉고 귀를 세워 듣는다”고 했다. “희망이 있어서 희망을 품으라는 것이 아니라 희망이 없기에 희망이 갖고 있는 힘을 빌려 힘을 내라”는 것이 그의 희망론이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좀처럼 앞이 안 보이는 상황 속에서 젊은이들은 ‘위로’와 ‘힐링’에 빠져들고, 중장년층은 ‘피로사회’를 호소한다. “지난 대선에 등장했던 안철수 현상도 절망의 문화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현상 자체가 젊은이들의 절망에 편승한 분위기에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지요. 젊은이들이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기성체제가, 사회가 나를 절망으로 빠뜨리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스스로 일어설 생각을 못하는 겁니다.”
우선 그는 희망을 ‘콘텐츠’가 아닌 ‘에너지’라고 해석한다. 희망이란 ‘바라봄(望)’의 법칙이며, 기운(에너지)을 모으는 ‘결기(結氣)’의 과정이라는 것. 소설 ‘큰 바위 얼굴’에서 나오듯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생생하게 바라보는 대상을 결국 닮아가려고 에너지를 모아가는 것이 희망이라는 설명이다.
“내 앞에 객관적으로 절망스러운 상황이 전개됐다고 칩시다. 이럴 경우 나에겐 3가지 선택이 주어집니다. 관망, 절망, 희망이지요. 관망은 그냥 사태를 무심하게 주시하는 겁니다. 절망을 택하면 내 몸에서 순간적으로 에너지가 다 빠져나가 다리가 풀리고 주저앉게 됩니다. 반대로 희망을 택하면 에너지가 모입니다. 주먹이 불끈 쥐어지고, 없던 기운을 모으고, 주변의 도움을 끌어들이게 되는 거지요.”
차 신부는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아무거나 붙잡고, 그것을 희망이라고 우겨라!”는 말을 해준다. 아무리 근거 없는 희망이라도, 붙잡을 때 흩어진 기를 모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절망에 부닥쳤을 때 뿜어져 나오는 오기, 강기(깡다구), 호기(호연지기)도 희망을 표현하는 다른 이름이라는 설명이다.
희망은 절망에 빠진 사람뿐아니라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데도 중요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최근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 연설에서 “중국인의 꿈을 이루자”고 역설했듯 우리 정치권도 ‘국민통합’을 말하기 전에 미래에 대한 희망을 줄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차 신부는 오히려 젊은 세대들에게 큰 목소리로 되물었다.
“펄펄 끓는 심장을 가진 청년은 그 자체가 희망인데, 젊은이들이 기성세대에게 희망이 어디 있냐고 묻는다면 우리 사회는 희망을 어디서 찾아야 합니까. 변화와 더 좋은 시기는 기다려봤자 영영 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삶의 ‘구원투수’는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입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